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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3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7 - 건강검진

2023년 7월 8일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마지막 약을 복용하고 오전 7시 20분쯤 병원으로 출발했다. 건강검진을 받기 전 어떤 진료를 선택할지 정했다. 아무래도 뇌혈관 검사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뇌 MRA를 추가하고 환복을 했다.


 생각보다 검사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안내받은 층으로 향하니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기에 대기 없이 CT를 찍고 유방 초음파를 검사했다.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구강검진부터 일반 검사를 다 끝내고 나서는 내시경실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우선은 내시경을 하기 전 기포 제거제를 마시고  대기시간 동안 다른 검사를 받으러 이동했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던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몇 시간 동안 금식이라서 물을 마실 수가 없던 상황이라 소변 검사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내시경 검사가 끝나면 소변 검사를 다시 진행하기로 하고 위와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 이동했다.


 간호사는 바늘을 꽂기 위해서 혈관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찾기가 힘든지 당황을 한 눈치다. 혈관을 찾기 위해서 간호사의 지시대로 주먹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했는지 모르겠다. 힘겨운 노력 끝에 겨우 혈관을 찾아서 주사 바늘을 꽂았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시 빼고 다른 곳을 찌른다. 결국은 팔은 실패하고 손등에 주사를 꽂았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느낌상 직접 두 눈으로 주사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면서 맞는 게 덜 아픈 것 같다. 그래서 간호사가 주사를 잘못 놓아서 미안해할 때도 별생각 없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을 하고 나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이내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내시경을 받을 때 침이 흘러 머리키락에 묻을 수도 있다며 친절하게 머리까지 묶어주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길래 일어났더니 웬 여자분도 나를 따라 내시경실로 들어가려고 한다.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으며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멀뚱히 지켜보니 동명이인이라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간호사는 생년월일까지 부르며 다시 한번 본인 확인을 했다.


 내시경실 안으로 들어가서 안내받은 베드 위에 누워 있었다. 한 20분 넘게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수면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마취를 하지 않아도 졸음이 몰려왔다. 내 몸은 이미 수면 마취를 받을 최적의 상태가 만들어졌다. 혹시나 헛소리를 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녹음기를 켜놓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는 안내를 받고 이동을 했다. 베드에 누워서 수면 마취제가 흡입되자마자 3초도 안 돼서 잠이 든 것 같다. 분명 들어갈 땐 두 발로 걸어서 들어갔지만 나올 땐 누워서 나왔을 것이다.


 검사를 하고 나서 잠에서 깨기까지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일어나라고 깨우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비몽사몽 한 채로 앉았다. 낙상 위험이 있어서 움직이지 말란 말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이후에는 간호사의 부축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남은 검사를 받았던 것 같다. 뇌파 검사, 뇌 MRA, 질초음파,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끝냈다. 그런데 검사를 받는 도중이 잠이 들었다가 이동할 때는 다시 깨기를 반복해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사를 받을 때마다 잠든 나를 깨우며 간호사의 부축으로 걸어 다녔던 것 같다. 분명 검사를 받은 건 확실한데 꿈속인 것처럼 몽롱해서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어찌 됐든 무사히 검사를 마쳤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결과는 바로 알려 주었는데 생각했던 대로 결과가 나왔다. 역류성 식도염, 미란성위염, 위용종, 십이지장염, 위축성위염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 정도면 위와 관련된 질환은 다 가진 상태인 듯하다. 대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별 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 달 치 약 처방전을 받았는데 주변에 문을 연 약국이 없다. 일단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돈가스를 먹으며 엄마와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내시경을 받자마자 죽이 아니라 돈가스를 먹는 거냐면서 황당해했다. 엄마의 반응에 괜찮다고 말을 하고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코인 노래방에 들러서 1시간 동안 놀다가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건강검진을 받은 당일 날 저녁에 먹은 것은 바로 곱창전골이다. 친구들은 내시경을 받고 나서 바로 이런 걸 먹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이미 점심으로 돈가스까지 먹은 상태라고 했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몸을 사려야 할 것 같아서 술은 소주가 아니라 맥주를 택했다.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내시경을 받았으니 술을 안 먹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소주 대신 맥주를 먹겠다는 말을 듣고는 황당해했다. 딱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서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맛있게 먹기만 했다. 내 위장이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주지 않을까 싶다.


 각자 자기 삶을 사느라 만나기 어려웠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좋았다. 17살에 만났는데 벌써 10년이 흘렀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10년 뒤의 미래가 지금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10년 후 미래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그때는 과거가 되어있을 현재를 돌아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17살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27살이 되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7살의 모습은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지금 겪고 있는 경험들이 피와 살이 되어서 나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10년 뒤에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며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껏 나의 선택은 틀린 것이 없었고 앞으로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이다. 잘 이겨냈고 스스로를 대견하다며 칭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담긴 글을 써 내려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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