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선'의 공간
글 · 사진 · 편집 김용성
건축이란 거시적인 시선으로는 예술이고, 기술이며, 사회이다. 건축을 위한 준비를 거듭해야 할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 조건이 많고 실현되기까지 과정이 길다. 그 과정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의견을 내기 때문에 본래 아이디어가 존중받기보단 아이디어가 존중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놀랍도록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는 종이 속에만 그 모습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실제로 꺼내졌을 때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획일화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쌓여온 건축의 모습은 어떤가. 벽은 벽이고 지붕은 그저 지붕이다. 이곳저곳이 구분되어 나뉘어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발전을 위해선 구분 지었던 '선'을 조금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곳 DDP는 정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 없이 때로는 벽이 지붕이 되며 하나로 어우러져 그 '선'을 조금 흩트려놓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서로 다른 모습을 제공한다. 그리고 공간들은 다시 한번 동선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여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지금의 DDP가 존재하게 되었다.
옛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안착한 거대한 건축물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는 2014년 많은 이들의 걱정과 기대 속에서 완성되었다. 이 공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걱정과 비난, 비판 그리고 희망과 기대가 공존했다. 그리고 완성된 결과 속에서 또 다른 비난과 비판이 생겼지만 이번 글에서는 DDP안에 있는 희망과 기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DDP를 설계한 건축가는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이다. 오랫동안 자하 하디드는 페이퍼 아키텍처라고 불려 왔다. 그 이유는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들, 종이 안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프로젝트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잠재력을 의미했다. 기술의 발전 등으로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고, 실제로 완성된 건축물들은 기존에 볼 수 없던 것들을 실재하게 하였다. 놀랍도록 날카로운 직선, 주변과 호응하는 곡선은 신선한 충격을 만들어 내며 무질서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구축해냈다.
때는 2007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디자인 서울'이라는 사업을 토대로 동대문 운동장 철거를 시작으로 큰 변화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국내에는 동대문은 오랫동안 봉제공장과 의류산업, 도매상가, 종합 패션 쇼핑몰 등으로 동대문만에 정체성을 가지게 되어 최초의 주제는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소개하는 디자인 스트리트 조성이었다. 하지만 건축부지 조성과정에서 한양도성과 하도감 터 등 많은 조선시대 유구와 유물들이 발견되어 역사문화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역사문화와 디자인이 합쳐진 관광지 조성 계획을 발표함과 동시에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 국제지명 초정 설계경기를 공모하였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안인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이 당선된 것이다.
그렇게 2007년 사업을 기점으로 2009년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완공을 시작으로 2014년 3월 2일 DDP가 개관하였다.
지하철역을 통해서 DDP를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유구 전시장인 [하도감 터]이다. 기존에 역사를 잘 보존하고 함께 공존하며 새로운 실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만들어낸 역사 보존법은 단순히 역사를 지켜보고 구경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역사문화공원으로서 쉼으로 작용하고 이용자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보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며 이곳은 많은 희망을 품었다. 자하 하디드는 시공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했으며 그녀가 들고 온 설계안 기존에 존재하던 2D 도면의 설계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설계안대로 건물을 지어나간다면 외장패널로 사용되는 수만 무려 45,133장의 패널이 필요했다.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먼저 현장답사가 급급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외장패널 업체에 견학을 나가본 결과 그 업체들은 매우 구시대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그 방법을 따른다면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너무도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힌트를 얻은 것은 조선, 바로 배를 만드는 설계 분야였다. 건축과는 다르게 단단한 곡면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기술과, BIM(3차원 입체설계) 방식을 합해 다양한 패널을 자동화 작업으로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시간과 제작비용이 줄었고 45,133 조각의 퍼즐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광활한 야외 공간을 즐기고 내부로 들어서면 마치 미로 같음을 느낀다. 단순히 직선으로 이어져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공간이 아닌 곡선으로 이루어져 자유로운 경계는 우리에게 낯섦을 부여하기엔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무심코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내부에 기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물 자체를 지지하는 기둥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둥이 주는 규칙성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이 거대한 건축물이 기둥 없이 지지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켄틸레버의 원리 때문이다. 켄틸레버는 주로 다리 같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데 한쪽은 돌출되어 있고, 한쪽은 지지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는 지지대와 균형을 이용한 것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엄청난 조형미를 뽐내는 계단이다. 편의를 위한 부분을 제외하곤 단 하나의 직선을 찾을 수 없다. 난간은 단순히 난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건물 속에 작은 조형물이 되어 그 내부를 빛낸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계단을 오르는 동선도 일반 계단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위아래 수직운동을 통해 위층으로 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단순히 노동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건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계단에 사용법이라고 생각한다. 피하고 싶은 계단이 아닌 산책을 유발하게 만드는 계단, 그런 계단이 건축물 내부에 존재한다면 그 건축물을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깊게 보여줄 수 있다. 평상시 보던 시선에서 한층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색다른 경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높은 곳을 찾아서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건축은 합리적이라는 명목 아래 세모, 네모 공간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주변의 자연을 조금 둘러본다면 이는 굉장히 어긋나는 모양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 속에는 단 하나의 자연 속에는 정리된 규칙, 질서,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물이 태어나는 땅은 제아무리 평평하다 한들 굴곡이 있을 것이며, 숲을 이루는 나무들 조차 정확히 올곧게 올라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선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요소일 뿐이며 규칙과 질서는 인위적임을 뜻한다.
이렇듯 더 이상 건축물에는 이곳저곳 확실히 구분 지어놓은 강렬한 직선이 아닌 이곳도 저곳도 될 수 있는 공간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선을 그려야 한다. 그 선의 모습은 단순한 직선으로 표현할 수 없다. 자유로운 표현 속에 존재하는 규칙성이 없는 '선'만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발전에 사용되었던 '선'을 발전시켜야 우리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