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이를 시작한 것도 사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울에 살면 인생이 뒤집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통근 시간이 줄어든 것을 빼고는 인생이라는 큰 대목을 두고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집 안에(그렇지만 원룸이기에 방이나 다름 없는) 전신 거울이 생겨 입고 나갈 옷을 좀 더 세심히 고를 수 있다는 것, 피곤한 날에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쥐 죽은 듯 잘 수 있다는 것, 배달 음식을 엄마의 잔소리 없이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 멀지 않은 한강을 자전거 타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 직장 근처에서 술을 먹고 타는 택시의 비용이 적게 나오는 것. 그것들 외에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두려움 없이 시작한 자취 생활은 고독의 연속이었다. 지인들과 만나지 않는 날에 집에, 그것도 밤에 침대에 누워있으면 침대가 곧 우주같이 느껴졌다. 끝없는 진공 상태의 방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혼잣말을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이해가는 시점이었다. 왜냐면 굳이 말을 하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주말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몇 마디라도 할 수 밖에 없다.
'양말이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자취 초반에는 연락처를 뒤져 친구들에게 전화를 곧잘 했지만 그것이 내 우주 미아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진작 때려치웠다. 다른 사람을 만나 있으면 이 고독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집 안에 사람을 들이고 시간을 보내봐도 똑같았다. 타인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외로움이라면 그와 함께 있던 시간 외에도 그로 인한 충만함으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 외로움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숙명인 걸까?
한 때 용산역에서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를 보고 마음이 아픈 적이 자주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서울의 가장 큰 랜드마크는 남산 타워인데 그걸 보면 자꾸만 어딘가가 저렸다. 그곳에서 있던 추억도 생각날 뿐더러 돌아갈 수도, 그걸 다시 향유할 수도 없는 현재의 처지가 걸렸던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남산 타워를 볼 때마다 Y가 떠올랐다. 남산의 산책길을 다시 걷는다면 Y와 걷고싶다 생각했다.
Y는 때때로 내게 전화를 걸곤 했다. 우리의 통화는 술에 취해 있고 대개 영양가 없었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영광과도 같은 어리고 멍청했던 날들을 반추하며, 그 틈에서 서로 닿았던 날들을 아쉽다고 여기는 멍청한 청춘이었다. 마침 Y도 타지 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짐작하길 Y도 숙소에서 나와 같은 진공 상태를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Y 때문에 서울로 이사한 것과 다름 없다. 그런 탓에 Y과 서울에 있었을 때에는 그런 외로움을 Y가 충족시켜주길 바랐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객지에서 부딪혀 지내는 지금에서야 외로움을 이해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Y와 나 사이에는 지리멸렬한 단어들 외에는 서로의 사이를 정의할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 오고 많은 것을 알려줬던 사람이라 괜한 미련만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 서울에서, 서울에 직장을 가지고 살고 있다. 솔직히 몇 년이나 더 이짓거리 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