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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Nov 10. 2022

쉬어가는 열정

요즘 하루

요즘은 홀로 많은 시간을 지탱하는 이상한 하루를 보낸다.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안부 전화를 핑계 삼아 또 수다를 떠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려 애쓰지만, 전혀 외롭다는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삶이 무기력하거나 열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꼬집어 말한다면 다만 쉬어갈 뿐이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해보면 별것 아니듯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집 밖을 나가는 것도 안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맛을 알아서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가끔 나를 찾아서 안부를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챙겨야 할 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날이 있었다. 주말을 빼곤 날마다 약속을 잡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던 하루.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닌 혼자이면 왠지 외로워 보일까 봐 그리고 나 자신이 외톨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바동거렸던 것 같다. 


관심이 있는 화제가 아니어도 만남에만 목적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딴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시간을 채우려 카트를 끌어주며 같이 장을 봐주고. 새 옷이 필요 없어도 그 사람이 쇼핑을 하면 따라가서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차 한 잔 얻어 마시기 어려운 인색한 사람에게 내 돈 써가며 그냥 그 사람과의 관계 유지에만 집착했다. 짜증스러운 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척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그 시간을 복기하며 '내가 대체 뭘 하고 들어온 거냐?'며 자책하기에 바빴다. 


예민한 사람은 정작 자기가 예민하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해 일부러 예민하지 않은 척 털털한 척하지만, 그 사람이 상당히 예민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을 잘 살피고 눈치를 보며 맞춰줄 수 있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주는 상대는 없었던 듯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혼자가 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인 게 무조건 좋은 건가?' 자문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에는 아내가 살해된 후, 그 충격으로 10분밖에 기억을 못 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나온다. 난 어떠한 충격도 없이 서서히 인간관계를 줄이며 수다를 포기한 것뿐인데, 어느 날부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단기 기억이 희미해지는 현상이 잦아져서 혼자만을 외치던 내가 점점 메멘토가 되어간다는 착각과 혼란에 빠지는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머리가 멍해지는 부작용을 겪다 보니 치매 예방을 위한 고스톱을 혼자 노는 놀이에 추가해야 할지. 일부러 수다를 떨러 규칙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처럼 쉬고 있는 이 시간을 멈추고 다시 인간관계에 열정을 쏟아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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