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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푼 Nov 05. 2022

작은 것들의 힘

  집에서 칵테일이나 여러 음료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꼴에 바텐더라고 아는 체하며 던져줄 수 있는 팁이 한 가지 있다. 음료를 만드는 과정에 10~20% 정도의 농도로 만든 소금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그것이다. 고작 한두 방울의 소금물로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냐 싶지만, 음료에 따라서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약간의 짠맛을 첨가함으로써 음료가 가지고 있던 단맛은 보다 풍성해지고, 날카로웠던 산미는 부드러워지며, 쓴맛은 비교적 줄어든다. 쌉싸름한 허브 계열의 리큐르에 시험을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실제로 전세계의 수많은 바 작업대에는 소금물이 든 스포이드 병이 놓여져 있다. 실로 작은 것으로부터 오는 큰 변화다.


  큰 차이는 늘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작은 차이가 쌓여 큰 차이가 되기도 하고, 단 하나의 작은 차이로 인해 전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 보여 눈 앞의 무언가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것 하나하나를 얼만큼 인지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그 작은 차이가 결국은 무언가를 구분하게 하고 서로를 다르게 해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고민과 시도를 거듭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어쩌다 발견한 그 작은 차이에 감탄하고 열광한다.


  나 또한 이런 작은 차이를 지니는 작은 것의 힘에 매료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커다란 계획이 세워지고 나면 그 안에 필요한 자그마한 요소 먼저 신경쓰는 편이다. 계획 자체를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면 우선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다보면 방향이 잡히리라 생각하고 움직여본다. 어떤 일을 매듭짓는 단계에서는 혹시나 놓친게 있지 않을까 몇 번을 더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경험할 때도 작은 부분에서 더 큰 감동이나 영감을 받는다. 커다랗고 충격적인 경험의 신선함보다는 일상에서 오는 소소(小少)함이야말로 오래도록 곱씹을 추억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작은 것은 대체로 번거롭다. 눈에 잘 띄지 않아 그것을 찾아 잡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큰 것에 비해 간단하고 손쉽게 손을 볼순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대충 하게 되는 귀찮은 일이 많다. 곧바로 큰 차이로 이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어서 당장의 동기 부여가 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것은 자주 막막하다. 눈에 띄다 보면 끝이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생각은 닿았는데 손이 닿지 않는 것이면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작은 것에 연연하는 이들의 마무리는 늘 타협과도 같다. 게다가 작은 것은 결국에는 외롭다. 아무리 신경을 써서 준비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하고 쑥쓰러울 정도의 것이라 가만히 넘어간다. 어디서든 누군가는 보고 있고, 언젠가는 누구나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부지런히 작은 것에 시선을 보내며 마침내 묵묵히 다루어내려는 이유는, 나 역시도 작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역시 대체로 번거롭고 자주 막막하며 결국에는 외롭지만, 그러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작은 차이를 쌓아 나가며 세상을 바꾸어왔다. 사람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개인은 작은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작은 차이가 사람이라는 범주 자체의 특별함을 만든다. 나아가, 너무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너무 작아서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무언가가 분명 있으리라. 다른 모든 작은 것이 그렇듯 말이다.  


  그래서 작은 것은 힘이 있다고, 작은 사람인 내가 믿는다.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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