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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푼 Jul 18. 2022

함께, 라멘


  어느날 버릇처럼 들여다보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함께라멘데이'라는 계정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3주 동안 각지에 있는 50여 곳의 라멘집에서 각각 다른 아홉 그릇의 라멘을 먹고 스템프 카드에 도장을 찍으면 추첨을 통해 굿즈를 선물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아직은 마니아틱하긴 하지만 엄연한 하나의 외식 문화로 자리잡은 라멘 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보고자 기획된 행사인 모양이었다. 꽤나 오래 전부터 라멘을 좋아해왔던 나로서는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참가 매장들 중에는 종종 즐겨 찾는 곳도 있었고,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있었다. 이벤트 시작 열흘이 지난 오늘 6번째 그릇을 비웠다. 라멘을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이벤트계정을 태그해서 스토리에 올렸는데, 참여해줘서 고맙다는 DM이 왔다. 말풍선을 두 번 누르고나서 이런 행사를 기획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답장을 했다. 라멘으로 데워진 속이 더 따뜻해졌다.

  라멘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뚜렷하지 않다. 워낙에 먹을 것, 그 중에서도 특히 면 요리를 좋아하긴 했지만 왜 하필 그 중에서도 라멘일까. 기억이 닿는 최초의 라멘은 흐릿한 유년 시절 일본에서 먹었던 '라멘 다이가쿠'의 '미소라멘'이었다. 당시 살던 동네에 있던 라멘집이었는데,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부모님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먹곤 했다. 막 나온 라멘에서는 달짝지근한 향을 머금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스프에서는 구수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났다. 맛도 맛이었지만 활기찼던 가게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자라면서 겪은 경험과 상상력이 보정해준 기억이겠지만, '어서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의 느낌표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었지만, 20년이 지나 찾은 동네엔 아쉽게도 옛날에 살던 집도, 라멘집도 없어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좀처럼 제대로된 라멘을 맛보지 못했다. 가끔 선물로 받은 인스턴트 라멘을 집에서 끓여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훌륭한 라멘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학생에게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던 데다가 지금처럼 이곳 저곳에 있지는 않았기에 찾아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어쩌다 라멘을 먹으러 가는 날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성황리에 영업중인 '하카타분코'를 그 중에서도 자주 찾았다. 일부러 손님이 안 몰리는 시간대를 노리곤 했는데, 언젠가 가게에서 혼자 앉아 먹고 있을 때 면 사리를 추가로 주문했더니, 마음이 동하셨는지 자투리 챠슈를 함께 내어주셔서 맛있게 먹기도 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처음 한 달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홀리데이'를 만끽했다. 슬슬 '워킹'을 정해야 할 타이밍에 하라주쿠를 배회하다가 한 라멘집을 찾았다. ‘AFURI’라는 이름의 심플한 간판이 간접조명으로 장식되어 있던 가게는 언뜻 카페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표 메뉴였던 '유즈시오라멘(유자 소금 라멘)'을 주문했다. 감칠맛이 도는 닭과 어패류 베이스의 스프는 적당한 포인트가 되는 유자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넘어갔다. 쌉싸름한 겨자채와 아삭한 멘마(죽순절임), 숯불로 한 번 구워진 챠슈까지 토핑의 조합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런 라멘이라면 매일 먹어도 안 질리겠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오는데, 입구에 붙어있던 직원 모집 공고 포스터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공고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라멘을 먹는 세계에서 라멘을 만드는 세계로 넘어갔다.

  매일 아침 간판을 켜고, 숯에 불을 붙이고, 육수를 끓이거나 반대로 늦은 새벽 육수를 옮겨담고, 화로를 닦고, 간판을 끄는 일상은 나름 즐거웠다. 끝이 정해져 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스탭들은 외지인이었던 나를 편견없이 대해 주었다. 손님이 올 때 마다 '어서오세요!'라고 외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동료들의 칭찬에, 어렸을 적 동경했던 느낌표가 내 것이 된 것만 같아 뿌듯했다. 처음에는 설거지를 비롯한 온갖 잡무부터 시작했지만, 차츰차츰 할 수 있는 일을 늘려 나갔다. 마지막 목표는 스프와 면 삶기 등 그 시간대의 라멘의 맛을 관리하는 '멘바'라는 포지션이었다. 가게에서 쓰는 조리도구와 똑같은 것을 구해다가 연습을 했다. 손에 굳은살이 살짝 베길 때 쯤에, 내가 삶은 면을 본사의 조리 총괄 담당 직원이 맛보고는 손님에게 내어도 괜찮겠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그렇게 두 손에 국자와 면 채반이 쥐어졌다. 하루에 100그릇은 보통이었고 많을 때는 300그릇 가까이 면을 삶아 그릇에 옮겨 담았다.

  멘바에 서고 나서는 신경쓸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시간대의 책임자에 준하는 위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재고 관리나 접객, 스탭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가게 영업 전반을 두루 살펴야 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라멘의 맛이었다. 손님들의 기대에 충족할 수 있도록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해야 했다. 열심히 담아 낸 한 그릇이 빈 그릇으로 돌아올 땐 더없이 기뻤지만, 반 이상 남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단순히 먹는 양이 적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잘못된 것이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며 남은 그릇의 맛을 보던 선배의 버릇을 따라하곤 했다. 라멘 한 그릇의 맛을 결정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요소들이 개입했다. 기온과 습도에 따라 면을 삶는 시간이나 스프의 온도가 달라지다보니 계절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두어야 했다. 토핑으로 올리는 겨자채를 어느 정도의 길이로 손질하느냐, 다른 토핑을 어떤 순서로 올리느냐 같은 것도 중요했다. 가끔 다른 지점의 멘바 동료들과 모여 이야기하게 되면 나중에는 꼭 이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게 좋다느니, 저럴 땐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느니 하는 크고 작은 팁들이 오갔다. 일하는 곳도, 시간대도, 출신도 모두 달랐지만 목표로 하는 한 그릇은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자연스레 다시 라멘을 먹는 세계로 돌아왔다. 먹는 입장에서는 감사하게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라멘집들이 생겼다. 육수나 제면, 챠슈 등의 토핑 등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고 그 종류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어서 찾아 먹는 재미가 있다. 언제 어디를 가서 어떤 메뉴를 주문하게 되든지, 라멘이 완성되어 서빙되는 순간은 늘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테이블 건너편의 세계를 잠깐이나마 엿보고 왔던 내게는, 그릇에 담긴 것이 면과 육수, 고명이 전부가 아닌 탓이다. 남은 2주동안 3개의 라멘을 어디서 먹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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