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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Dec 24. 2023

불확실이 자아내는 레퀴엠(Requiem) 1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혼란스럽지만 달콤하다.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결국 길을 찾는다. 불안한 사회 속 고독한 개인들의 여정이 펼쳐진다. 비틀즈 음악이나 재즈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주인공 ‘나’는 사랑하는 이를 찾아 두 개의 세계를 넘나 든다. 무엇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누가 본체이고 그림자인지 아리송한 경계선 위에서 여러 파열음이 빚어진다. 그 속에서는 간접화의 시대를 위해 하루키가 연주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레퀴엠이 들려온다.

     

1.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선     


 17살 여름 해 질 녘, ‘나’는 사랑하는 ‘너’와 함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만든다. 상상 속 도시인 줄 알았지만 ‘너’는 자신이 도시 속 본체의 그림자라는 말을 남기고 갑작스레 사라진다. 증발해 버린 ‘너’를 그리워하며 40대가 된 ‘나’는 결국 그 도시의 벽 안으로 들어간다. 도시의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삶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반복된다. ‘나’는 그림자를 버리고 꿈 읽는 자가 되며 도시의 삶에 순응한다. 그러나 꿈 읽는 작업이 반복될수록 그곳에서의 삶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헷갈린다. 결국 ‘나’는 그림자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도시에 남는다.   

  

 도시 밖으로 돌아온 ‘나’는 공허함을 느끼고, 대도시의 도서출판유통 회사에서 산속 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도서관 관장으로 직장을 옮긴다. 그는 시골 마을에서 전임 관장 고야스 씨,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꿈 같이 느껴졌던 도시가 실재한다는 단서를 발견한다. 혼란스럽지만 무엇이 진짜 현실이든 그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회성이 결여된 채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던 소년은 자신을 그 도시로 데려가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도시에 들어간다. 소년은 도시에 남았던 ‘나’를 만나 꿈 읽기 작업을 시작한다. 마침내 ‘나’는 자신이 본체이든 그림자이든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도시 안팎을 표류하며 한층 성장한다. 무엇이 현실 세계인지, 누가 진짜 본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상에서 이미 현실과 비현실은 혼재하고, 한 개인에게는 여러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텍스트 초반부에서는 어떤 게 진실인지 찾게 되지만 한장 한장 넘길수록 그 진위여부는 무의미하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을 믿고 그 결정을 스스로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으로써 ‘나’는 빛난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 우리는 말하자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입니다. 아마 낙하를 막을 방법은 찾을 수 없겠죠. 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피할 방법이 없진 않아요. 믿는 겁니다. 누군가가 땅에서 당신을 받아주리란 것을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겁니다. 보류하지 않고,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744쪽)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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