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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Dec 24. 2023

불확실이 자아내는 레퀴엠(Requiem)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 비현실의 현실화와 파열선의 포로들     


 하루키가 텍스트로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누구도 전염병 때문에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거리두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상황이 현실화되었다. 세상은 망해가는 듯했고, 마스크를 낀 채 삶과 사랑을 붙잡아야 했다. 그 스냅샷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같았다. 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꿈꾸었던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은 어그러진 채 마스크와 혼술에 뒤덮인 삶을 전전했다. 교수들과 동기들의 얼굴은 노트북 화면상으로만 존재했고, 실재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맥없이 사라져 가는 젊은 날의 초상을 어떻게든 그려보고자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덜컥 사랑을 나눴다. 예기치 못한 성급한 사랑은 마스크가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불콰하게 취한 것마냥 비틀댔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마스크를 쓴 채 헤어졌다.

    

 팬데믹이 사그라질 때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세계대전 이후로 두 번 다시없을 줄 알았던 국가 간 전면전은 스크린을 깨뜨리고 나와 그 비정한 자태를 드러냈다. 뉴스로 생중계되는 포화의 현장은 그저 아비규환이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 위에서 많은 이들이 생사를 넘나들었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화면 앞에 서 있던 나 역시 군인이었다. 머나먼 타국의 전쟁 소식에 우리 군 수뇌부는 흥분했다. 우리도 언제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면서 싸우면 이길 수 있는 만반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라고 떠들어댔다.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며 윽박지르는 그들 앞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전쟁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마치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듯했다. 정작 내가 하는 일은 하염없이 군수품 피피박스를 까서 개수를 세고, 부대 환경정비를 한다며 맥없이 예초기와 갈퀴로 수풀을 베는 거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무의미하게 반복되었다.    

 

도시는, 아니, 당시 도시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바깥 세계에 만연하는 역병을 차단하기 위해 높고 튼튼한 벽으로 주변을 둘러쌌다. / 벽은 모든 종류의 역병을-그들이 생각하는 ‘영혼이 앓는 역병’도 포함해서-철저히 배제할 목적으로, 도시와 그곳 주민들을 새로 설정해 나갔다. (528-529쪽)
나는 과거에 군인이었네. / 그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지. 그 시절, 전쟁이 일어났네. 어디와 어디의 전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군. 뭐 지금 와서는 아무려나 상관없는 일이지. 그쪽에선 늘 어딘가와 어딘가가 싸우고 있었으니까. (98쪽)     


 하루키는 오늘날 현실과 비현실 사이 생겨나는 여러 파열선을 포착한다. 어느 순간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뒤덮였고, 그 속에서 개인은 점차 파괴될 수밖에 없다. 메말라가는 사회와 인간의 정처 없는 방황은 텍스트 속에서 두 개의 세계로 그려진다. ‘나’는 사랑을 잃어버린 채 떠돌다가 감정이 사라진 세계-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너’를 볼 수 있다. 고독 속으로 침잠해도 괜찮다. 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의 자아-그림자-를 배격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일-꿈 읽기 작업-을 단순 반복하면 된다. 등장인물들이 익명으로 나오고, 시계에 시곗바늘이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마음의 잔향을 없애버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이름과 시간은 무의미할 뿐이다. 벽 너머의 저쪽 세계가 아름다운 곳은 결코 아니겠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친 이쪽 세계에서는 선악미추를 논할 수조차 없다. 불행히도 이런 파열선의 포로는 텍스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를 거친 많은 이들이 수용소에 갇히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텅 빈 자아를 만들어 낸다.     


그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어. /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에게는 이런 이야기 방식이 지극히 평범한 리얼리즘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해. 그가 살던 세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혼재했고, 그런 풍경을 보이는 대로 썼던 게 아닐까. (672쪽)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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