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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10. 2024

관종의 시대 3

냉소와 위악의 보편화


3. 관종의 시대와 청년 세대의 보수화     


 60년대 일본 우익 청년들은 과거로 복고할 것을 주장하며 강한 남성성으로 자신의 나약한 내면을 감췄다. 오늘날 한국 일베 유저들은 과거에서 비롯된 사회 부조리로부터 도피하고자 냉소와 위악의 가면을 썼다. 두 집단이 주장하는 바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지만, 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릇된 방법으로 자신의 자긍심-실제로는 허영심-을 드높이려 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유사하다. 이른바 관종의 시대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더 이상 소수 집단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관종으로 변해간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청취하지 못하며,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는 현대인들이 점점 늘어간다. 포장된 자아가 촉발한 각종 정신의학적 질병(분열증 등)을 앓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나라 정치꾼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일베 등 소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소비되던 혐오의 언어를 논리 정연하게 보이게끔 정돈해 하나의 담론으로 내세웠다. 특히 ‘이준석 신드롬’은 열패감에 시달리던 청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는 일베식 사고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한데 모아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을 펼쳤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을 가지고 사람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를 위한 공정인지,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에 대한 숙의는 배제되었다. 보수 세력의 고정 지지층인 60대 이상 노인층에 더해 이준석 신드롬에 열광한 2030 청년층(특히 남성 대상)을 기반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이른바 ‘세대 포위론’은 공공연하게 되뇌어졌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보수정당의 권력 탈환으로 이어졌다.  

   

 청년 세대의 보수화는 단순히 치기 어린 젊은이들의 일탈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오늘날 포장된 자아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횡행하고, 여기에 기성세대로부터 암암리에 강요당했던 평범한 삶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무너지자, 냉소와 위악의 마스크가 정치ㆍ사회적 지형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소비 양상의 변화를 넘어 망국적 징조를 가리킨다. 물론 타락한 현실을 만들어 내고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매우 크다. 천편일률적인 평범 내러티브를 주입할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개성을 투영한 다각화된 평범함이 필요하다. 한편 우리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의 잘못에 냉소 짓고 혐오의 언어를 발산할 게 아니라 좀 더 깊고 넓은 혜안을 길러야 한다. 위선 대신 위악을 선택한다는 변명은 죄악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어 왔는지, 그 시스템의 잔여적 존재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관심을 가지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


 잔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잔인한 사회를 가능케 한다. 청춘은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신뢰하고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말을 함께 곱씹어 본다. 자신이 과연 진정한 청춘일지 마음속 깊이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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