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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10. 2024

관종의 시대 2

일베의 부상 - 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2. 일베의 부상 – 성공만능의 부산물


 한국의 일베(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유저들의 사고방식은 『세븐틴』의 소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타락한 세상에 맞서 가장 타락한 방식으로 말뭉치를 뱉을 뿐이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관종’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압축한다. 그들은 자신의 사고를 길고 논리적으로 펼쳐내기보다 짧고 즉흥적으로 내뱉는다. 긴 시간 진행되는 서사(narrative)는 지양하는 반면 짧은 순간 생성되는 에피소드(episode)를 지향한다. 그들의 에피소드 지향성은 ‘짤’과 ‘드립’으로 대표된다.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다른 유저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근원에는 냉소가 자리한다. 사회적 약자를 약자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약자라는 생각을 하나의 단편적인 장면과 말에 냉소적으로 담는다. 일베 안에서는 이를 저격하거나 나무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른 생각들을 배격하고 즉각적인 반응에 집중하다 보니, 무엇이 진정 불합리한 것인지 사고할 힘을 잃은 채 자긍심만 강해진다. 강화된 자긍심은 가면 쓴 자아만을 남김으로써 관종의 탄생에 기여한다.     


 이들의 냉소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평범 내러티브로부터 기인한다. 평범한 삶이란 흔히 생각되는 중산층의 생활양식이다. 대학 졸업 후 그동안 쌓은 이력을 바탕으로 취직한 뒤, 주 5일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신을 반기는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긴다. 사회 초년생부터 모은 돈으로 수도권에 자가 주택을 구입하고, 거기에 자가용까지 갖추면 자신의 삶은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다. 출세하여 사회 고위층이 되는 것 같은 엄청난 삶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성공한 삶이다. 그러나 이 같은 평범 내러티브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헬조선’의 현실이 많은 청년들에게 실제로 다가오며 그들은 열패감을 느낀다.     


 어쩌다 우리 청년 세대는 성공만능주의의 사회에 갇혔을까. 그 기원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90년대 해소되지 못하던 사회 불안을 총체적으로 폭발시켰고,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본 논리에 의해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수많은 실업자가 생긴 한편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힘든 삭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은 점차 개인주의화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발전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청년들은 끝없는 경쟁시장에 몸을 던졌다. 대학은 이른바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97년 전후로 형성된 사회 지형은 여전히 공고하다. 극대화된 자본 논리의 산물은 우리 사회를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무한 경쟁사회로 만들고,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과 무관심은 전 세대를 통틀어 심각해져만 간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나마 발휘되는 공감력이 더 이상 사회의 잔여적 존재들이 아니라 편입하고 싶은 중심핵 계층을 그 지향점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사회 정의를 외치고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래봤자 호의호식하고 싶은 욕망으로 뒤범벅된 똑같은 인간들인데 누가 누구를 비판한다는 것인가. 이른바 일베 내에서 ‘강남좌파’라는 드립으로 대표되는 이 같은 비아냥은 그들이 거리낌 없이 위악을 주장할 수 있는 심리적 근거가 되었다. 위선 대신 위악을 선택한 일베 유저들의 사고는 타락한 세상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쉬운 결론이자 가장 타락한 도피였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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