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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일근 May 29. 2022

그램/백종원  단순함 추구

단순함의 추구

단순함의 추구


그램의 디자인은 LG의 PC사업부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시도였다.


적자가 누적되는 사업부에서 제품의 디자인에 투자를 강화하기는 쉽지 않다. 적자가 계속되는 사업부의 책임자는 대개 제품의 경쟁력보다는 Operational Excellency(이하 OE)에 집중하게 된다. 원가를 절감하고 재고를 줄이는 방안에 힘을 쏟는 것이다.


당시 새로 부임한 CEO 역시 생산과 판매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고 부진한 사업은 구조조정으로 축소해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매달 현장경영을 통해 개선을 시도했다. 임원회의에서는 경영전략과 마케팅이 중요하게 논의되었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CEO가 주도하는 회의는 자연스럽게 Operation 중심이 되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브랜드, 유통, 마케팅에 치중한다. 결국 시장에서 브랜드와 유통을 어떻게 장악하느냐가 중요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브랜드와 유통이 취약하면 성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TV와 대형가전은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부피가 큰 제품들은 부품 생산, 품질관리, 유통, 재고관리 등 모든 과정이 최적화되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가 없다.


특히 신제품을 출시하면 수요예측과 생산량 조절, 그리고 재고관리, 이 세 부문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 제품이 안 팔리는 경우 빠르게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 대응 속도가 곧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TV와 가전처럼 규모가 큰 사업은 손실 역시 대규모로 발생하게 된다.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제품은 재고로 쌓이게 되고, 대형가전의 경우 창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싸게 처분할 수밖에 없다. 재고는 곧 돈을 쌓아 두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SCM(supply chain management)라고 하는데 기업들이 이 분야에 전산화를 추진하며 투자를 늘리고 있다. 회사가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재고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2017년부터 5년 이상 TV연구소장을 하면서 중요하게 느낀 점이 있다. 사업의 복잡도를 줄이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거나 복잡하면 이윤을 내기 힘들다.


200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복잡성에 대한 논문과 ‘hidden complexity’라는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미국의 햄버거 체인 중 한 회사가 메뉴를 4개로 줄이는 획기적인 시도로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도 식당을 다녀보면 음식을 제대로 하고 잘 되는 식당은 대개 메뉴의 종류가 단순하고 두세 개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IT사업부장일 때 여의도의 ‘창고’라는 식당에서 지인들과 식사한 적이 있다. 늘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는데 차림표를 보니 메인 메뉴가 안심구이와 등심구이 딱 두 가지뿐이었다. 후식으로 된장찌개와 냉면이 곁들여질 뿐이었다. 이렇게 메뉴가 단순하면 재료 구입과 식자재 관리가 쉬울 것이고, 메뉴가 적으니 재료가 당일 소진될 것이고, 매일 신선한 고기를 받아서 쓰니 고기의 맛이 최상으로 유지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사업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작은 음식점에서 한 수 배우는 순간이었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어느 유명한 짬뽕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가게는 점심시간에만 영업을 하는데 하루에 짬뽕 딱 1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 맛있는데 가격이 싸서 문을 열기 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린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도 이 원칙이 등장한다. 성공한 요식 사업가 백종원 씨가 장사가 안 되는 식당들을 코칭할 때 제시하는 대표 원칙이 바로 메뉴의 단순화다. 자신 있는 주력 메뉴 한두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미련을 두지 말고 모두 내리도록 조언한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른 식당들은 대부분 성공을 거둔다. 요즘은 이렇게 한정된 양만 만들어 파는 맛집들이 많아졌는데 수익성을 매우 높일 수 있는 SCM 전략이라 하겠다.


LG전자에서 TV는 꾸준히 매출이 높은 품목이다. 2000년대 말에는 TV 매출이 10조 이상까지 달했지만 매출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2018년에는 영업이익률이 1~2%에 머무르며 수천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에 만족해야 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복잡도가 높아짐에 따라 Operation Loss가 많아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부서는 경쟁사의 제품 라인업에 1:1로 대응하려 했다. 경쟁사가 이런 제품을 내놓으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제품으로 맞서야 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품의 종류가 늘어갔다. 상품기획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맞는 얘기지만, 상품기획이 확장될수록 제품의 라인업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애플의 경우 복잡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1997년에 여러 가지 결단을 내렸지만 그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제품의 복잡도를 줄인 것이다. 뉴턴과 같은 PDA 사업을 정리했고, 매킨토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을 정리했다. 애플의 제품 70%를 아웃시켰고 3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애플은 평범한 제품을 수없이 생산해내는 대신 소수의 훌륭한 제품에 집중했고 그 결과 빠르게 턴어라운드 할 수 있었다.


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PC를 만들어서 구색을 갖추는 것보다 하나의 제품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서 고객의 요구를 맞추려는 전략을 시도를 한 것이다. 또한 기능적으로는 제품의 무게를 줄이는 것에 집중을 한 것이고 나머지는 버리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단순함의 추구 그 결과가 바로 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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