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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일근 Jun 12. 2022

클라우드 시대를 선도한 MS CEO 사티아

사티아의 그램 칭찬

오랜 파트너, 마이크로소프트


2002년 TV 시장에 불던 혁신의 바람


마이크로소프트와는 2000년 이후 많은 프로젝트를 같이 했다. 2002년 LG는 타임머신 TV를 개발 중이었고 미국에서도 TV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기술들이 시도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PVR(Personal Video Recorder)과 TV 프로그램 가이드 EPG(Electronic Program Guide)를 이용해서 TV 기술을 혁신하려 했다.


빌 게이츠도 TV에 관심이 많아서 이 분야에서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웹 TV를 구현하기 위해서 여러 업체들을 인수하며 연구 개발에 힘을 쏟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TV에서 뭔가 새로운 혁신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미국 TV 시장의 주도권은 컴캐스트, 타임워너 같은 케이블 업체들이 나눠 가지고 지역별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투자 없이도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던 케이블 업체들은 새로운 기술 혁신 따위는 원하지 않았고 현재의 사업이 지속되기를 원했다. 케이블 TV를 시청하려면 백 달러 정도의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고액의 시청료를 케이블업체에게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혁신이 필요했다. 디지털 TV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TV 기술에도 혁신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시장에 퍼져 있었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여 개발된 것이 하드디스크를 이용한 PVR(Personal Video Recoder) 기술과 프로그램 가이드를 적용한 티보(Tivo) 박스였다. 인터넷이나 전화선으로 TV 프로그램 가이드를 다운로드하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TV 프로그램을 하드디스크에 녹화해서 저장할 수가 있었다. 기존에 사용되던 테이프 기반의 아날로그 VCR과는 달리 일반 컴퓨터처럼 하드디스크에 TV 프로그램을 저장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녹화가 쉽고, 빨리 보기, 건너뛰기, 되감기 등 동작을 지금의 유튜브처럼 매우 간편하게 할 수 있게 해 줬다. 또한 녹화된 프로그램에서 광고를 바로 스킵 내가 보고 싶은 장면으로 바로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별 기능이 아니지만 당시로선 아주 혁신적인 방식으로 TV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TV 혁신을 향한 의기투합, 그리고 실패


LG전자도 TV에 하드디스크를 넣어서 이런 기능을 구현하였고 2004년에는 세계 최초로 하드디스크가 내장된 TV를 출시했다. 당시 이 기술에 대해서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관심이 많았고 윈도 기반의 PVR박스를 구현하려 연구하는 개발팀이 있었다.


나는 2002년 CES에서 이 팀을 만나 의견을 나눴고, 함께 개발해보기로 의기투합했다. 프로젝트명은 ‘윈도 PVR’. 개발 총책임자는 프랭크였다. 그는 스탠퍼드 출신인 GM(General Manager)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GM은 상당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필요한 자원투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LG전자가 하드웨어를 맡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 후 개발을 마치고 시장에 출시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미 Tivo기술이 시장을 선점한 뒤였고, 사업 초기여서 소비자들이 우리 서비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전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하드웨어 사업은 생각보다 소비자들에게 어필되지 않았다. 그 당시는 애플의 iPod가 시장에서 대세였고 사람들의 관심이 iPod와 iTunes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PVR박스는 마니아층에게만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고 책임자인 프랭크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2009년 소득 없던 재회


그 후로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별다른 협력이 없다가 2009년에 CEO, CTO와 함께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는 LG전자가 스마트폰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이다. 윈도 스마트폰을 개발 중이었는데 진행이 잘 되지 않았다. 우리 CEO는 스티브 발머 사장과 윈도 개발팀을 만나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동안 출장을 많이 다녔지만 처음으로 LG 전용기를 타고 갔다. 예상대로 전용기는 편리한 점이 많았다. 미국 내에서 이동할 때 공항 수속이 간단했고 이동시간이 많이 줄어서 좋았지만 CEO와 동행엔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스티브 발머 회장의 첫인상은 굉장히 친근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친구처럼 대하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 CEO에게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이름을 부르며 친밀함을 표했다. 역시 영업 분야 출신답게 노련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전문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당시 스티브 발머 회장의 전략은 Apple과의 정면 승부였다. 애플의 스마트폰에 대응하는 제품을 출시해서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윈도 스마트폰을 계속 밀어붙였고 노키아까지 인수했지만 결국 스마트폰 사업에서 실패하며 수십 조 원을 날려버렸다.


그 원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디자인, 부품, 생산, 품질관리 등 아주 복잡한 생태계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대로 관리가 쉽지 않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둘 다 잘하는 회사가 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애플만이 유일하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제대로 하는 회사이고 이 균형을 잘 맞추어 가고 있다. 삼성과 LG도 하드웨어는 잘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향후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스티브 발머가 회장을 맡는 동안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발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클라우드 시대를 선도한 CEO 사티아


시간이 흘러 2014년 HE 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나는 PC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PC를 홈 서버로 만들어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서비스를 연구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 사업을 위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된 사티아를 만났다. 2014년만 해도 MS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윈도 폰은 실패했고 노키아 인수도 효과가 없었으며 검색엔진도 구글에게 밀리며 사면초가 상태였다. 거기에 소프트웨어 서비스도 클라우드로 옮겨가는 와중이었다. CEO를 맡게 되자  LG와 삼성에도 인사차 방문했었다. 나는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으로부터 그가 LG의 그램 노트북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이렇게 잘 만든 제품을 미국에 판매하면 좋겠다고 칭찬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었다. 미국에서 그램 판매를 제안했지만 우리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마이크로 소프트가 직접 서피스 노트북을 만들어서 판매를 시작을 했다. 그렇게 서피스 노트북은 시작을 한 것이다. 역시나 그는 한국 방문에서 LG와 만나기를 원했고 나는 CEO와 함께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상당히 겸손하고 통찰력이 있어 보였다. 그가 대화에서 클라우드 First라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젠 서비스를 클라우드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MS는 윈도 OS를 직접 제조업체들에게 팔아왔다. PC 한 대당 윈도 하나가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iPhone, iPad 및 맥북의 판매가 늘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의 스마트폰과 패드의 판매량도 함께 증가하였고 그 여파로 PC 출하량은 자연스럽게 줄어갔다.  매출과 이익은  하락했고 노키아 인수가 실패로 끝나면서 회사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얼마 뒤 그는 Cloud 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MS를 다시 도약시켰다.  워드, 파워포인트 등 오피스 프로그램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동시켰고, 월 정액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오피스 365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 서비스는 윈도뿐만 아니라 애플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모두에서 지원된다.


이제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클라우드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MS의 선도적 전략은 매우 훌륭했다고 본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과 비전을 가진 CEO 한 사람이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 모범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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