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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일근 Jun 14. 2022

Netflix CEO와 만남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다. 

2. 넷플릭스와의 새로운 도전


컨설팅의 현명한 활용


2007년 LG전자의 컨설팅을 맡고 있던 맥킨지는 TV사업에서 자산을 가볍게 하기를 권했다. TV 생산을 중국 업체에게 OEM을 주고 자체 생산공장은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애플의 생산 방식인데 LG도 따라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장점이 있는 방안이지만 LG의 실정에는 맞지 않아 보였다. 애플이 제품을 중국 팍스콘에서 생산하지만 그들만의 생산 노하우와 개발 방법이 탄탄히 구축되어 있기에 품질 유지가 가능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 보고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컨설팅 업체의 의견은 자사의 현실을 한번 더 점검해가며 신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1년 뒤 맥킨지는 CEO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TV에 Tivo라는 새로운 기능을 넣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던 PVR(personal video recorder)인데 하드디스크가 들어있는 세탑 박스다. 이 박스는 기존의 아날로그 테이프 VCR과는 달리 하드디스크에 TV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 장치였다. 하드디스크에 녹화돼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다가 쉽게 광고를 건너뛸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미국에서는 TV 시청 중에 광고가 너무 자주 나와 소비자들이 짜증을 낸다. 나도 미국 출장 때 TV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광고가 많다고 느꼈는데 광고를 건너뛰게 해주는 기능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방송국은 광고 건너뛰기 기능이 반가울 리 없지만 소비자들에겐 환영받으며 제법 팔리고 있었다.


맥킨지는 이 기능을 LG TV에 넣으면 미국 시장에서 많이 팔 수 있다고 제안했다.  Tivo와 LG 양쪽에서 커미션을 받을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당시 LG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고 싶던 CEO는 외부 컨설팅 회사의 인력을 많이 스카우트하며 신뢰를 표했다. 미국 뉴저지 LG전자 법인에는 맥킨지 주도로 태스크 팀이 꾸려졌고 본사의 상품기획 인원들이 파견 가서 지원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기능을 TV에 구현하기란 생각처럼 단순한 작업이 아니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CTO도 제품 개발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서 이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지만 CEO와 맥킨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구원투수 넷플릭스의 등장


심각한 국면인데 넷플릭스에서 제안이 왔다. 그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LG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싶다는 것이다. 당시엔 애플에서 TV 박스를 출시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활성화되지는 않은 단계였다. 넷플릭스는 1997년에 리드 헤이스팅스 이 설립했고 비디오 대여사업으로 출발했다. 월 정액제로 DVD를 편지봉투에 담아서 배달하고 반환받는 형태였다. 월 정액 20달러이고 한 번에 3개까지 대여 가능했다. 배송받은 DVD는 연체료 없이 무기한 이용이 가능하지만 다른 DVD를 대여하려면 이전의 DVD를 반납해야만 했다.


2007년부터는 인터넷 망을 통해서 비디오 스트리밍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한 비디오 시청은 이전에 여러 회사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한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망의 속도가 느려서 시청 도중 버퍼링으로 인해 화면이 멈추거나 접속이 끊기는 현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체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매우 영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비디오 시청에 필요한 작은 세탑 박스를 대만에서 만들어 50달러에 판매했다. 가입자들은 이 박스를 구입해서 인터넷에 연결하면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최신 영화는 아니지만 볼만한 작품들로 제공했다. 이 박스가 제법 팔려 나가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을 본 듯하다.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 서비스를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넣기로 한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이 기능을 넣을 수만 있다면 세탑 박스 비용 50달러가 줄고 하드웨어를 없앨 수 있다. 그래서 LG와 삼성에 제안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이 기능을 넣어주면 신규 가입자마다 일정 금액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LG전자의 비디오 사업부로서는 새로운 수입원이 생기는 것이었다. 재료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소프트웨어만 수정해서 이 기능을 구현해주면 수입이 생기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기능을 블루레이에 구현했고, 2008년 CES에서 세계 최초로 LG전자 블루레이가 이 기능을 시연해 보였다. 인터넷으로 영화가 재생되는데도 끊기지 않고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스트리밍 되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LG전자는 인터넷에서 비디오 스트리밍을 제대로 하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고, CTO는 맥킨지가 제안한 Tivo 박스를 넣는 대신 넷플릭스를 넣는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직접 CEO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그는 기꺼이 한국으로 날아와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펼쳤고 마침내 CEO가 설득되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프레젠테이션 중 최고로 꼽고 싶다. 자기 서비스가 왜 애플의 TV 스트리밍을 이길 수 있는지 설명했다. 애플은 유료, 넷플릭스는 무료! 이것이 요지였다. 콘텐츠가 최신영화는 아니지만 무료이고, 최신영화는 요금을 받고 메일로 보내는 방식이다. 거기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혁신적으로 만들었다며 데모를 보여주었는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TV에서 넷플릭스를 이용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리모컨으로 영화를 검색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로선 매우 불편한 문제이다. 그러나  영화 선택을 PC에서 한다는 것이다. PC에서 영화 검색과 선택이 리모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쉬워진다. PC로 영화를 선택해 놓으면 서버에 보관된 영화 콘텐츠가 TV에 나오기 때문에 사용자는 OK 버튼 하나로 영화를 시청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데모를 보여주니 CEO도 설득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자연스럽게 Tivo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하기로 의사결정되었다. 맥킨지의 제안은 없던 일이 되었고, 지금 돌아봐도 결과적으로 현명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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