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와이드 모니터
IT사업부장을 맡게 되었을 때 오래 알고 지낸 KAIST 정 교수와 서울대 산업과 조 교수를 만나 조언을 들었다. 파스타를 잘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IT사업에 대해 유익한 얘기들을 들었다.
정 교수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지도교수가 삼보컴퓨터를 설립한 이용태 교수였다. 그는 박사과정 중에 캐논의 레이저 프린터에 들어가는 한글전용 그래픽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인재다. 졸업 후에는 벤처를 창업했는데 일본의 세이코 엡슨과 삼보 컴퓨터가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얼마 가지 못하고 자본잠식이 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1997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삼보에 입사해서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때는 IMF가 터져 삼보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정 교수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PC를 싸게 만들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때 만든 삼보의 PC 브랜드가 이 머신즈이다. 전략은 아주 단순했다. 부품을 대량으로 싸게 공급받아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PC를 만드는 것이다. IMF 시기라서 부품업체들도 판로가 없었기 때문에 망하는 셈 치고 이머신즈를 밀어주었다. 그렇게 초저가 PC를 만들어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델, HP, 애플, IBM 같은 미국 대기업의 집중적인 견제가 시작됐고, 결국 특허소송과 품질 문제로 인해 이머신즈는 미국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정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모니터 사업은 이제 사양사업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가 고민을 털어놨을 때 정교수는 모니터가 유망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모니터 시장은 대만과 중국 업체들의 가격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었다. 29인치 모니터가 29만 원 정도였고 21인치는 대부분 10만 원 대에 불과했다. 디자인과 화질이 떨어지는 저가 제품이 주도하고 있어서 메리트가 없는 시장으로 보였다.
PC 시장에서 고전하던 LG는 2012년에는 모니터 사업까지 적자가 났다. 그동안 꾸준히 수익을 내온 사업인데 그 마저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때문이었다. 스마트 기기가 확산되면서 PC 수요가 줄기 시작했고, PC가 안 팔리니 당연히 모니터 판매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모니터가 이제 사양 사업이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정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같은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수백만 원하는 세탁기, 냉장고, TV를 쓰고 고급가구는 수천만 원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니터는 수십만 원짜리 싸구려를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가정의 필수품인 모니터도 프리미엄 제품이 나온다면 성공할 수 있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울트라 와이드 모니터가 나오기에 앞서 울트라 와이드(21:9) TV를 TV사업부에서 개발했었다. 2011년 유럽 회사인 필립스가 먼저 폭이 넓은 TV를 출시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때까지 TV의 비율은 16:9였는데 극장용 비율인 21:9를 TV에 도입한 것이다. LG전자도 이에 대응해서 98인치 21:9 TV를 개발해 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TV 영상의 기본비율은 16:9이다. 그런데 폭이 넓은 21:9 화면에 이 영상이 나오려면 양옆에 블랙 바가 생기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렇게 검은 화면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영상을 옆으로 길게 늘이면 날씬한 사람이 뚱뚱해 보이는 왜곡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서 21:9 TV는 인기가 없었고 그 이후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 21:9 모니터도 같이 개발하였었지만 TV가 실패하자 IT사업부는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다. 29인치 21:9 모니터는 70만 원대로 기존 16:9보다 2배 이상 비싸서 잘 팔리지 않았다. 한 달에 1000대도 팔리지 않았고 회사도 별로 의지가 없었다. 그러다 없어질 제품으로 여겼다. 그런데 정 교수는 하이마트에서 21:9 모니터를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들어서 바로 현금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제품을 사용해보니 몇 가지 불편한 점은 있지만 아주 만족했다고 한다. 정 교수와 저녁을 먹는 동안 모니터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다. 지금은 모니터가 저가 시장이고 오로지 가격경쟁만 하고 있는데 가정과 사무실에서 사용되는 품질 높은 프리미엄 제품으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나는 21:9 모니터를 PC에 연결하고 직접 테스트를 해봤다. 그 결과 TV와 달리 21:9 모니터는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됐다.
첫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OS가 21:9 포맷을 지원하고 있었다. PC와 연결하니 모니터 화면에 윈도 바탕화면이 꽉 채워졌다. TV와는 다르게 양 끝에 블랙 바가 생기지 않았다.
둘째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엑셀 등 오피스 프로그램이 21:9 포맷을 지원하고 있었다. 특히 MS 워드는 이 모니터에 최적화돼있어서 화면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읽기 모드에서는 화면을 동시에 3개까지 띄울 수 있었다. 작업하기에 더없이 좋은 모니터 환경인 것이다. 엑셀의 경우는 스프레드 시트가 21:9로 펼쳐지니 옆으로 길게 확장된 시트에서 작업하기가 편리했다. 엑셀을 많이 사용하는 회계나 영업 직원은 모니터 한 대에서 많은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모니터 두 대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 모니터에 소스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다른 모니터에서 디버깅하면 무척 편리하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도 한쪽엔 강의 자료를 띄워 두고 다른 쪽으로 강의를 보면 편리하다. 이렇게 21:9 모니터는 한 대로 두 대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확실히 효율적인 제품이었다.
이런 장점들을 직접 확인하자 프리미엄 모니터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곧 쉽지 않은 문제들과 직면했다. 먼저 가격이었다. 그 당시 29인치 16:9 모니터가 30만원 정도인 반면 21:9는 70만원으로 가격이 2배에 달했다. 당연히 소비자들의 저항이 심했고 월 판매량이 1000대도 안 되었다. 가격이 비싸고 인지도도 낮아서 프로모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21:9 모니터 확판 태스크 팀을 구성하고 베테랑 마케팅 책임자를 팀장으로 선임했다. 태스크 팀장은 해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시장뿐만 아니라 주요 해외시장을 공략했다. LG가 모니터 사업은 세계시장에서 2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유통망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유통망을 점검하고 프로모션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초기에는 성과가 나지 않았다. 첫 달에 겨우 2천대 정도 판매되었다. 세계시장에서 모니터 연간 판매량이 천만 대 이상 되는 사업부인데 한 달에 2천대라니.. 과연 이 모니터가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국가별 판매량을 들여다보니 일본과 독일에서는 판매가 제법 되고 있었다. 좋은 신호로 보였다. 일본과 독일 사람들은 제품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벤츠, BMW, 포르셰 같은 자동차와 독일의 주방기구나 가구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으로 잘 팔리고 있다. 나는 독일과 일본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짜고 적극 추진했다. 매주 판매 진척 상황을 챙겼고, 태스크 팀원들을 현지로 출장 보내서 판매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두 나라를 중심으로 월 오천 대까지 판매량이 올랐고, 6개월 뒤에는 월 만 대에 달했다. 그렇게 21:9 모니터 사업은 점점 커져갔고 지금은 연간 수백만 대가 판매되는 캐시카우, 즉 돈 벌어주는 사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