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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운(運)은 준비와 기회가 만날 때 찾아온다.

by 김성훈


어제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4년 선배이자, 사회생활과 인생에서 큰 도움을 준 고마운 선배와 함께 경기도 문산의 도라산전망대를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는 멀지 않지만, 그곳을 향해 가는 동안은 마음속에서는 묵직하고 긴 여운을 안겨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선배와 경의선 홍대입구역에서 만나 문산행 전철을 탔다. 평일에는 문산역에서 임진강역을 잇는 열차가 하루 두 편 뿐이라, 문산역에 내린 후 마을버스를 타고 임진각으로 이동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평야와 하늘은 한결같았지만, 점점 북쪽으로 다가갈수록 공기는 묘하게 차분해지고 풍경도 소박해졌다. 임진각 관광안내소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싣고 온 관광버스들이 즐비했다.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오후 1시 출발이었다. 일정은 제3땅굴 견학, 도라산전망대, 통일촌 방문 순서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1978년 발견된 제3땅굴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남방한계선 400m 지점까지 파 내려온 길이었다. 땅굴 입구에서부터 내려가는 경사부터가 꽤 가파르고, 어둡고 축축한 공간을 따라 내려가며 당시의 전쟁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와 군사적 대치의 무게를 떠올리며,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제3땅굴에서 나와 도라산 전망대로 이동하니 시야는 한층 더 탁 트였다.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북측 장단 들판과 개성 시내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서울에서 불과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이렇게 다른 시간이 흐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 군 복무 시절 나의 부대는 양평이었는데 상병 때 연천 GP에 전방 체험 교대근무를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철문, 철책, 대북방송처럼 무거운 긴장감이 가득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DMZ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체험학습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내판에서 “방문객 1,000만 명 돌파”를 보며, 시대가 만들어낸 변화의 흐름을 느꼈다.


통일촌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듯했다. 담장도 대문도 없는 깨끗한 주택, 손길이 닿은 정원, 고요하게 흐르는 일상. 마치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국 근대사와 분단의 아픔, 그리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노력까지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마음을 흔들었다.

이렇게 세 곳을 둘러본 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보니 우리는 앞으로도 몇 번의 여행을 함께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의 농업관광지, 강경 젓갈축제, 지방의 일일투어들까지. 여행사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일일 여행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특산물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친구와도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새로운 여행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전 ‘한 번의 추천’이 만들어준 인생의 방향

이날의 여행은 단순히 우리나라 분단의 현장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나에게는 선배와의 인연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에게 이 선배는 단순한 고등학교 선배가 아니라, 내 직장 생활과 살아온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인생의 은인’이다.

선배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해외 플랜트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였다. 30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반도체 8인치 대구경 웨이퍼 생산공장을 건설할 때, 미국과 독일에 선진기술 연수를 다녀오고 선임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시절, 그 프로젝트에 투입할 후배 엔지니어를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배가 나를 택했다.

그때 선배는 나를 추천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웨이퍼 프로젝트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선망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나는 미처 몰랐다. 그 추천 한 번이 내 인생의 큰 계기가 될 줄은 말이다.

그 프로젝트 덕분에 나는 반도체 건설 경력을 쌓았고, 이후 S그룹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몇몇의 첨단 공장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결국 60조 원이 넘는 반도체 생산공장 건설의 책임자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내 직업 인생과 성장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 운의 출발점에는 그때 선배의 배려와 추천이 있었다.



운(運)은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찻아온다’

사람들은 종종 “운이 좋다”, “운이 따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온다.

운 좋은 사람들은 말투, 행동, 생각, 관계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고, 그 기운이 다시 ‘좋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태도에서는 좋은 운이 들어올 틈이 없다. 플라세보처럼, 잘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 결국 잘되듯, 운 역시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특히 운 좋은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을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을 주변에 둔다는 것이다.

'너와 있으면 즐겁다' '너라면 잘 될 거야’

이런 말들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복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긍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는 잊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어느 날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님 덕분에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잠시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런 일도 했던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도움을 준 사람은 쉽게 잊지만, 도움을 받은 사람은 평생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선배에게 계속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함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밥도 사고, 여행 비용도 기꺼이 지불한다.

내가 받은 도움에 비하면 지금의 보답은 정말 ‘새 발의 피’지만, 그래도 내 마음만큼은 진심이고 깊다.

인생을 돌아보면,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의 도움, 그리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고 노력한 나의 태도,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을 이어준 운(運) 덕분이었다.



도라산 여행에서 돌아오며 운(運)을 생각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생은 앞날을 알 수 없고, 누굴 만나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하는 일에 성실하고, 주변을 우선 배려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자기 삶의 성장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좋은 운은 기적이 아니라

좋은 태도와 좋은 인연이 만든 결과물이다.

어제의 여행은 단순한 하루 코스가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그때의 선배처럼 변함없이 사람을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고마운 인연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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