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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훈 Dec 25. 2024

나의 요리 이야기


4년 전 2020년 구정, 명절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가 뜻하지 않게 닥쳐온 코로나 팬데믹에 발이 묶여 16년간 이어온 해외 생활을 접고 급작스레 국내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만 집에 들르던 해외 생활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니,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작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특히 60대 중반의 아내는 해외 사업을 하던 남편이 느닷없이 집에 머무르게 되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는 일이었다. 십여 년 동안 집에서 밥을 먹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세끼를 챙겨야 하니 아내가 꽤나 난처해했다. 결국 해외에서 혼자 지내며 익힌 요리 솜씨를 내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눈치였던 아내도, 몇 가지 음식을 맛본 뒤로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현지 음식점이나 퓨전 한식당을 주로 찾았지만, 가끔 직접 요리해 먹을 때도 있었다. 그 경험을 살려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고,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아내가 “오늘은 뭘 먹고 싶다”라고 주문하는 일도 생겼다. 특히 라면을 꼬들꼬들하게 끓여주면 분식집 라면처럼 맛있다며 좋아했다. 인스턴트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던 아내가, 이젠 내가 끓이는 라면을 즐길 정도가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중국 상하이에서 농심 상해공장 건설책임자로 일하던 시절, 라면은 포장지에 적힌 대로 조리하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말을 농심 법인장에게 들었지만, 나는 나만의 요리법으로 끓인다.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라 해도, 이제는 우리나라 라면 맛이 세계 표준이 된 듯하다. 미국, 유럽, 동남아, 중국 어느 곳에 가도 매운 신라면은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통하니, 그야말로 K-푸드의 위상을 실감한다.


종종 양평의 집에 혼자 며칠씩 머무를 때면, “혼자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지인의 질문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내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레시피와 요리 비법, 그리고 해외에서 체득한 감각을 더하면 독창적인 한 끼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몇 번은 재료를 망쳐 버려 저녁이 늦어지고,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요리는 하면 할수록 과학처럼 흥미로운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도 한두 번은 “맛있다”라고 얘길 하지만, 내가 하는 즉석요리가 한식 밥상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데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밥심으로 사는 우리는, 역시 따뜻한 밥과 찌개의 맛이 최고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도 요즘은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면, 아내가 좋아할 재료 위주로 고르게 되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런 마음으로 매끼를 준비했겠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식보약”이라는 말처럼,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만큼 좋은 보약도 없다. 의사도 큰 병에 걸린 환자에게 “음식을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어려운 살림에도 따뜻한 밥을 지어주신 어머니와 할머니의 마음이 떠오르며 깊이 감사하게 된다. 은퇴자들이 요리 교실을 찾는 이유도,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직접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최근엔 아내가 “저녁에 뭘 먹을까요?” 하고 물어줄 때가 제일 행복하다. 내가 요리하는 재미를 느끼고, 아내는 새로운 메뉴를 기대하며 웃는다. 하지만 같은 메뉴를 연달아 만들어 혼쭐이 나기도 하고, “김밥이 맛있다”는 말에 아침부터 김밥을 싸다 또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맛있는 김치, 고기 볶음밥은 꽤 자주 해 먹는다.


대형마트에 가득한 식재료만큼이나 세상에는 다양한 요리가 있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라도 내가 준비하면 아내의 표정이 조금 더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함께 밥을 먹는 가족,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식구”란 결국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그동안은 때가 되면 당연히 먹던 식사였지만, 이제는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깨닫게 되었다. 4년 전 갑작스럽게 귀국하며 시작된 요리는,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사랑이 담긴 식사는 늘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요리를 준비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가장 큰 존경이자, 내가 배운 인생의 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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