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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훈 Jan 04. 2025

샌드위치 세대의 바램.



우리가 살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잘 사는 이웃 일본을 부러워하며 ‘언젠가 우리도 저만큼 잘살게 되겠지’ 했던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땀 흘려 회사 일을 하던 사람들, 밖에서 깃발 들고 목소리를 높이던 민주화 운동 청년들, 그 사이에 선 듯한 우리가 막연히 꿈꾸던 건 결국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는 바램이었지요. 그렇게 7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일본을 추월할 정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합니다.


석유 파동에 힘들어했고, 80년대 민주화의 격랑에 휩쓸렸고, 90년대 고도성장과 IMF의 충격도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200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고, 반도체와 신기술들이 불과 몇 해 만에 세상을 온통 바꿔 놓았으니, 한평생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었지요. 그런데도 우리 세대는 저마다 “이제 좀 편해졌나” 싶으면 또 일을 보고는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허허로운 근성과 기백이 지금껏 나라를 이만큼 일으켜 세웠다고, 나름 자부심도 갖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부모를 극진히 모시던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가슴에 묵직하게 걸립니다. 흰머리가 늘면서부터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첫 세대”라는 그림자도 따라다니고요. 그래도 살만큼 살았다고 했지만, 막상 시간은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게 지나와 버렸습니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도 초고령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느라 분주했고,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한창 일할 나이도 훌쩍 지났습니다.

그때는 샌드위치처럼 끼여 사느라 정신없이 바빴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바쁨은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이룩해 놓은 부와 자산이 꽤나 크다는 것도 안다만, 그게 자식 세대에게는 너무 높은 벽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우리처럼 죽어라 일하면 되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지금입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기회는 예전처럼 널려 있지도 않은 상황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부모보다 못 사는 자식을 생각하면 애닮픈 마음도 생기고,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며 체념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은 남았다고 생각힙니다.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도 알아야 하고, 몸이 허락하는 한 여러 가지 봉사도 하고 싶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보다,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어디에든 보탬이 되게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려면, 이제라도 나를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조금 더 살아볼 준비를 하는 거지요. 놀 줄 모르고 일만 한다는 말, 어쩌면 우리는 긍지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하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고들 하지만, 그 간극이 오늘날의 풍요를 만든 그림자 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았고,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이제 남은 건 잘 늙고 건강히 사는 일. 자식에게 버림받을지언정, 우리를 증명해 낸 흔적만큼은 인생의 훈장처럼 꿰차고 싶습니다.

남은 삶의 몫은 이제 각자도생이라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가진 노하우를 조금씩 나누며 살아가도 참 괜찮겠지요. 먼 훗날이 되어도, “우리 시대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라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샌드위치 세대들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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