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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국으로 해골물을 끓여도 넌 나의 아티스트

by 퇴B


포크송 가수는 포크송을 부르고,

댄스가수는 댄스곡을 내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취향의 선택과 안정성 면에서 훨씬 좋다.

포크송이 땡기는 날엔 그 가수 앨범을,

노동요가 필요한 날엔 다른 가수 앨범을 고르면 되니까.


반대로 한 가수가 1~5집 내내

장르의 방향성이 들쭉날쭉하다면,

우리는 앨범 전체를 구매하기보다는

취향에 맞는 트랙만 골라 들을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요즘은 유튜브나 스트리밍에서

자기 취향대로 플레이리스트를 짜 들으면 되니

가수가 한 장르를 고집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레이리스트는 어디까지나 ‘편집샵’ 일뿐이고,

가수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


편집샵이 취향을 ‘수집’하는 곳이라면,

한 장르를 꾸준히 파는 가수는

그 자체로 ‘세계관’이자 ‘고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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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티스트 본인들은

매너리즘에 원형탈모가 올지도 모르고,

“플라나리아 자가복제”라는 혹평에 시달릴지도 모르며,

같은 반찬 두 번만 올려도

경끼를 일으키는 예술적 신경증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근데—

난 소비자니까;;


장르는 결국 ‘기대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음악뿐 아니라 글에서도

이 원리가 똑같이 작동한다고 본다.


어떤 작가 글을 읽다 보면

“이건 시리즈로 묶었어야지, 왜 제목만 갈아치우고

똑같은 주인공에 똑같은 상황이야?”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다음 구매는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이건 ‘자가복제’와는 다르다.

일관된 세계관을 탐구하는 건

작가가 구축한 ‘세계’이며,

독자가 그 작가를 찾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익숙함이자 신뢰다.


그래서 나는

장르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아티스트보다

아예 본인이 장르가 되어버린 아티스트를 선호한다.

감독 이름만으로도 티켓을 사는 영화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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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가 김치찌개에 비엔나 넣으면 부찌,

순두부 넣으면 순찌,

꽁치캔 넣으면 매운탕이라고 우기는 건

좀 고깝긴 하다.


근데 어쩌랴.


그렇게 매일 먹어도 안 질리는 건

결국 그런 ‘사소한 변주’밖에 없는

엄마 김찌밖에 없더라.


엄마 된찌, 엄마 계란찜—

뭐든 “엄마표” 하나로 완성되는 그 맛.


반대로 엄마가 요리사인 내 친구는

엄마가 뭐든 다 잘해서

“엄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라고 했다.

진수성찬을 매일 먹었지만

정작 기억나는 시그니처가 없다는 거다.


그 말 듣고 괜히 슬펐다.

앞으로 얘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어떤 맛을 ‘고향’처럼 떠올릴 수 있을까 싶어서.


음식이 그렇듯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도 결국

‘기억의 맛’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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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그리워하며 찾아가는가.’

‘지금 굳이 소비하려는 그 맛은 무엇인가.’

이걸 결정짓는 건 특별함이 아니라 익숙함이다.


“바로 이 맛이야!”라는 순간을 완성시키는 건

사골국을 해골물 될 때까지 우려내는

그 지루한 자가복제다.


특별함을 완성하는 익숙함이라니.

생각해 보면 너무 인간적이다.


우리는 안정을 최고의 특별함으로 느끼는 종족이다.

버틀러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는 반복된 정체성으로 구축되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반복을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한다.


반복은 세계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의 유일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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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 아티스트, 제발 쭉 뻗은 그 길만 걸으라고.

그들은 매너리즘이라 몸서리쳐도

내게는 이미 그 자체가 장르니까!!!


애정한다, 애정한다!!!

넌 소비자권익을 선도하는 이미 나의 고향이다아아아앜!!!


익숙함이 쌓여 장르가 되고,

장르가 쌓여 고향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아티스트가 ‘혁신’보다

지금의 세계를 묵직하게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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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발표한 내 아티스트를 보고

내 친구가

“뭐야 이건, 신곡이 아니라 신포장 아냐?”라고 해서

빡친 거 맞고요.


쳇, 니가 뭘 알아!!!!

고향도 없는 년이이이잌!!!!


결론은—


“난 덕질하는 덕녀다.”

삼시세끼 사골국만 나와도

1년 365일 불평 없이 즐길 자신이 있다.

그곳에 내 아티스트의 숨만 묻어 있다면.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건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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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25년 11월 22일,

HOT 완전체가 ‘한터음악페스티벌’ 무대를 앞두고

맹연습 중인 영상이 올라오더라고요?


'고향'의 전사들이여,

일어나서 풍선 불 시간입니다.

ヽ(‘ ∇‘ )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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