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풀어보는 인간관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조표를 달고 살아간다.
문제는, 서로의 악보를 읽어보려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우리가 악보 위에서 만났다면
각자 어떤 음을 갖고 있을까.
나는 아마 ‘미(E)’.
기본적으로 들떠 있고, 조금 불안하고,
늘 반쯤은 과열된 상태로 살아왔으니까.
당신은 ‘라(A)’.
성격이 밝고 선명해서
누가 들어도 편안한 음.
엄마는 ‘도(C)’.
모든 기준이 되는 시작점이자
내가 어디로 벗어나도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자리.
한때 내 삶을 크게 흔들었던 그 사람은 ‘솔(G)’.
내 생애 가장 존재감이 강했던 음.
하지만 그 사람 앞에 상냥하고 싶어서
내가 흉내 낸 라(A)로는 결국 화음이 되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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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우리가 같은 음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같이 울어보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소리는 지금 그 순간의 감정만으로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나온 ‘조표(Key Signature)’를
봐야 한다.
그동안 어떤 리듬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사건에서 플랫(♭)으로 꺾였는지,
어디에서 샵(♯)처럼 치솟았는지—
그 흐름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온당한 소리자리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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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현재 어떤 음을 내고 있는지보다
그 음이 어떤 배경에서 온 것인지에 더 관심이 있다.
화음을 맞추려면
지금의 한 소절만으로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서너 장의 악보는 넘겨봐야 한다.
그 사람의 현재가 아니라,
그 현재를 만든 조표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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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 미인지 솔인지 설명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의 더블샵이 곧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힘든 시기에 잠깐 내려앉은 플랫을
‘원래 저런 사람이네’ 하고 혀를 차는 것도.
그는 결국 지금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니까.
우리는 아직 마지막 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어질 악절에 어떤 조표가 기다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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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인생에서 수많은 임시표를 받아
갑자기 치솟았다가 금방 가라앉고,
뜻밖의 사고에 맞춰 음이 뒤틀려 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내게도 언젠가는 찾아들지 않을까.
그 수많은 임시표들에 묶여 잠시 뒤틀린 소리가 아니라,
내 ‘조표’가 원래 의도했던 그 ‘온당한 소리자리’로 돌아갈 일이.
내가 이토록 바라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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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당신의 조표들이 궁금하다.
당신 또한 언젠간 그 자리로 돌아가야만 하니까.
설사 우리가 서로 다른 음을 갖고 있어
끝내 화음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난 당신이 내게 맞추려
억지로 까치발 서서 빌려온 샵(♯)에 불안하게 기대 있길 바라지 않는다.
또는 내 소리에 너무 눌려서 플랫(♭)인 채
고개도 들지 못하는 음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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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음이든,
자기 자리에서 나는 소리가
당신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불협화음인 채 안녕을 말하게 되더라도
나는 꼭 알고 싶다.
당신의 조표.
그리고 당신의 온당한 소리 자리를.
그게 내가 당신을 듣는 독보법(讀譜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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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게 원래의 산문시 버전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써 봤어요.
원본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
https://brunch.co.kr/@976ee4e6ad3d4d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