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뱅호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다 떨어뜨릴 뻔했다. 처음 우리 집으로 올 때 사용했던 이동용 케이지에 빈틈이 없어졌다. 산책이라도 하러 가면 좋으련만, 이번 나들이의 목적지는 동물병원이다.
거실 창가에 앉은 뱅호의 털이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캐러멜 향이 날 것 같은 진한 황금색 털 바탕으로 다리에는 검은색 줄무늬가, 몸통에는 크고 작은 검은색 점이 선명하다. 분명히‘야~옹’이라고 울지만, 가끔‘어흥’으로 들리기도 한다. 뱅호는 야생 살쾡이와 집고양이를 교배시켜 탄생한 품종인 뱅갈고양이다. 뱅호라는 이름은 그 생김새와는 달리 뱅갈고양이의‘뱅’과 첫째 아이 이름‘호’를 붙여 지은 것이다. 뱅호는 야생 살쾡이의 습성이 남아 있어서 왕성하게 우리 집을 탐험하고 있다.
2년 전 겨울 어느 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애완동물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젖도 채 떼지 않았을 것 같은 새끼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케이지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케이지를 두르려도 쳐다보기는커녕 눈만 껌뻑거린다. 아이들은 귀엽다고 소리치지만, 차가운 유리 케이지 안에 있는 새끼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안쓰러워 두 아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뱅호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케이지 안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몸짓이 꼭 나를 여기서 꺼내 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한동안 케이지 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뱅호는 활발한 움직임과‘야~아옹’ 소리로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고, 우리의 인연이 뱅호를 좁은 유리 케이지에서 탈출시켰다. 그날 애완동물가게에는 우리 말고도 2~3팀의 손님이 더 있었다. 사장님은 코로나19 이후로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우리 역시 원격수업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첫째 아이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고, 두 아이 양육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애완동물가게를 방문한 것이었다. 아이에게만큼은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싶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늘 핸드폰 배터리 열기만 전해주었다. 집으로 온 첫날 뱅호는 밤새 울었고 어릴 적 나처럼 외로이 빈집을 지켰던, 첫째 아이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출근하는 나의 아침을 지켜 주었고,‘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늦은 밤 돌아오는 남편을 맞이해주었다. 우리의 시작과 끝에는 늘 뱅호가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어른들은 일터로 나가고 나면 텅 빈 집을 뱅호가 홀로 지켰다. 뱅호만의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2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각자의 삶을 5개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돌았다.
언제부터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도 뱅호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났고, 창가에 앉아 글루밍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고양이들은 개들과 달리 까칠까칠한 혀로 털을 핥는 습성이 있다. 뱅호의 글루밍이 황금색 털에 진한 캐러멜 향을 불어넣는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워 이불로 덮고 싶다며 뱅호를 껴안던 딸아이가 제일 먼저 뱅호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엄마~뱅호 피나!!”라고 말하는 딸아이의 말에 청소기를 냅다 던지고 달려갔다. 털이 있어야 할 다리에 빨간딱지가 덕지덕지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배 부분에도 털이 빠지고 없었다. 스트레스성 오버 글루밍으로 인한 털 빠짐이 뱅호의 병명이었다. 고양이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으로 흔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늘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바빴던 뱅호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윤기 나는 털이 빠진 뱅호의 다리를 보자 잊고 지냈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라 고개가 무거워진다. 2010년 5월 남편을 만나 하나에서 둘이 되고, 준비할 틈도 없이 셋이 되었다. 뱃속에서 쿵쾅쿵쾅 심장 소리를 내며 살아있음을 전하던 아기는 얼마 못 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고, 갑자기 찾아온 행복의 기쁨은 덜컥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병원에서 돌아와 3일을 내내 창밖만 바라보았다. 남편이 잠시 외출했던 모양인지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하얀 털에 작고 귀여운 아이의 까만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작은 아이를 와락 껴안았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전해져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은비라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듯했다. 은비에게 위로받으며 차츰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되었고,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면 은비는 거실 바닥에 오줌을 지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어쩌다 산책하는 날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고 길바닥에 오줌을 지렸다. 첫째가 태어나 육아로 지친 나는 은비를 나보다 더 사랑해 줄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으로 그 인연의 끝을 맺었다.
어렸을 때도 길을 걷다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뛰어가 우유를 가져다주었고, 강아지에게 말을 걸며 쓰다듬곤 했었다. 초등학생인 나와 동생은 학교를 마치고 난 후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서로 말은 안 해도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썰렁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우리처럼 길에서 떠도는 그들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나눠 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로 반려동물을 집으로 들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을 차가운 길바닥으로 내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다. 반려동물은 반려라는 딱지가 떼지는 순간 인간 감정의 소모품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다. 그들도 고통과 슬픔을 느낀다. 다만 그 고통이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까지 전해지지 않을 뿐이다. 반려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며,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가족으로 맞이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로 누군가의 생명을 평생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위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동물병원 진료를 마치고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캣잎 스프레이와 츄르를 구입하고 나오는 길에 뱅호 장난감 택배가 도착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 남편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한껏 들떠있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뱅호에게 위로받은 시간만큼 각자의 방식으로 돌려주며, 그 인연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