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측한 책 내용과 그 책의 내용이 완연히 다르더라도 나름 그 재미가 쏠쏠하다. 글을 쓸 때 책 제목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되새겨 본다.
책 제목을 보고 내 마음대로 추측한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서함 110호에 사랑한다는 편지를 써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책 제목과 표지, 내용을 보고 책을 고른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아무런 거름 없이 빌리지만...
진솔이 가람이 약속시간에 늦는 바람에 전통찻집에 앉아 가람을 홀로 기다린다.
창밖을 바라보다 '흰 블라우스에 하늘색 플레어스커트를 받쳐 입은 긴 생머리' 진솔이 그동안 인사동 거리에서 두세 번 스쳐 간 적이 있었던, 그 자태나 인상이 왠지 기억에 남았던 여자를 봤다.
진솔은 잘 알지 못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너무 예쁜 고전적인 미인이라 생각하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작가는 이렇게 독자에게 슬픈 사랑을 살짝 귀띔해 줬다. 저 예쁜 여자가 뭔가 있겠구나... 하고
자신의 단짝 친구의 애인인하늘색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사랑해 수년째 그 곁을 맴도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진솔의 사랑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진솔이 사랑하는 건이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한 그녀에게 진솔의 앞에서 '차라리 나한테 오라고'말한 부분이었다.
건이에게 사랑이란 어떤 걸까? 진솔을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줘버린 그녀에게 미련이 남은 걸까? 아니면 오래된 익숙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내가 스무 살이었으면 건이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나이 마흔이 넘고 나니 자신에 대한 사랑에 확신을 못하는 건을 놓지 못하는 진솔의 사랑도 이해가 되고, 오랫동안 사랑한 이를 놓지 못해 새로운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의 애잔한 사랑도 이해가 되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가슴이 뜨거웠던 스무 살 때와는 달리 지금의 나에겐 묵직하고 애잔한 사랑으로 잔잔한 울림의 감동을 선물했다.
나도 이들처럼 뜨거웠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가슴속 깊이 간직했던 말랑말랑한 감성을 건드려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