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네 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 저녁에는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쉼 없이 쳇바퀴도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물론 그 쳇바퀴도는 삶 속에서도 때때로 행복을 느끼고, 때때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때때로 살아 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쉼 없이 반복되는 인생을 견뎌온 내게도 소소한 꿈이 하나 있다. 누구나 꼰대 같은 직장 상사에게 사직서를 시원하게 던지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도 아이들 학원비 걱정 없이, 매달 돌아오는 카드 값 걱정 없이 직장상사에게 과감히 사직서를 내던지고, 동네에 자그마한 책방을 내는 것을 수없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책 냄새가 좋아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주 찾곤 했다.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내게 아주 쏠쏠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대형서점을 제외하고 작은 동네서점은 아예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든다. 내가 어렸을 적 학교 앞 서점에서 참고서도 사고, 새로 나온 책도 구경하곤 했었는데 이제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경우가 더 빈번해져서 인지는 몰라도 동네에서 서점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나 역시도 온라인으로 주로 책을 구매하고 있다. 가끔 오프라인으로 책을 구입하고 싶을 때는 백화점이 있는 번화가로 차를 몰고 나가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들를 수 있는 거리에 서점이 없어서 아쉬웠던 찰나에 아이 하원 시간에 발견한 동네서점을 보자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동네서점 문고리를 잡고 말았다. 그 서점에서는 갓 구운 빵과 책을 함께 팔고 있었는데 오븐에 들어간 고소한 빵 냄새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요즘은 독립서점보다는 동네서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대형서점과 다르게 동네서점에는 각 서점마다 서로 다른 특색이 있다. 그 특색이란 다름 아닌 서점 주인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제일 잘 팔리는 1위부터 20위까지의 베스트셀러 책들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분야 책들 중 주인장의 마음에 드는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각 동네서점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특색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이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간 그 동네서점에서는 동물에 관한 책, 건강에 관한 책, 책에 관한 책 그리고 아이들에 관한 책들을 주제별로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었는데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가는 책이 있었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책 제목에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집어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몇 달 전 외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기 때문이었을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을 사게 되었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을 굽느라 책 계산을 늦게 해 주신 주인장이 건넨 갓 구운 빵에 나도 모르게 나의 속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두 분 너무 멋있어 보입니다. 제 꿈도 이런 동네서점을 갖는 거예요~”라고... 진심으로 책 빵을 운영하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아주 편안한 죽음’의 책 내용은 자신이 암에 걸린 줄 모르는 엄마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내는 두 딸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자신이 암에 걸린 줄 몰라 자신이 언젠가는 낫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병은 깊어지고, 그렇게 남은 일생을 암인 줄 모르고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과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은 어머니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치매를 앓고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치매가 심해졌고,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해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올해 9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병원에서 몇 번이나 자식들을 호출하며 고비를 넘겼지만, 끝내는 삶의 끈을 놓으셨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지 조문객들은 다들 호상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 과연 외할머니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하신 걸까? 편안한 죽음이란 과연 어떤 걸까?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자다가 생을 마감해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는 죽음이 편안한 죽음일까? 아니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죽음이 편안한 죽음인 걸까? 물음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란 우리 모두에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에 나에게 나의 마지막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비록 가족의 가슴에 상처가 될지라도 자다가 생을 마감하는 죽음을 선택할 것 같다. 그만큼 죽음이란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두렵고 피하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우리 모두가 결국 만나야 하는 존재... 책 속에서 주인공인 큰딸은 자신을 소유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란 듯이 성공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런 강인한 엄마의 마지막 곁을 지켜낸다. 벗어나고 싶어 했던 엄마는 암이라는 병에 걸려 판단도 흐려지고 나약해져 버렸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원망도 하고, 애잔하기도 한 주인공을 보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가 떠올랐다. 나의 엄마도 자신의 성격이 너무나 강하여 모든 일들을 판단해주며, 사소한 것까지 내게 가르침을 주시곤 하셨다. 물론 지금도 직장맘으로 엄마의 그늘 아래 사소한 것까지 참견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따스한 울타리를 얻은 대신... 잃은 것도 있다. 요즘 강인하기만 한 엄마가 건강이 좋지 못하다. 건강이 나빠져서 인지 예전에 비해 판단력도 떨어지고, 약한 모습을 보이시곤 한다. 나도 주인공처럼 강인했던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 약해진 모습에 애잔하기도 하다. 세상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 다 그런 것일까? 엄마는 살아가면서 딸을 자신의 삶 속 깊은 곳까지 끌어들여 자신과 딸을 동격 화하고, 나아가 자신의 편이 되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엄마와 딸은 한 몸이 아니며, 서로 너무나 다른 인격체이다. 친구 같은 엄마와 딸 사이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엄마와 자식 간에도 어느 정도 지켜야 할 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과정이 엄마에겐 서운하겠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강인한 엄마의 약한 모습에 주인공은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며,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자식의 첫 번째를 같이하는 사람이고, 자식은 부모의 마지막을 같이 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부모의 마지막을 지키는 자식의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 언제나 자기편이라 믿었던 큰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아닐까? 험한 세상을 지켜주던 울타리가 없어져 버리는 느낌... 세상 비바람 앞에 벌거 벗겨 내동댕이쳐진 느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아직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책의 제목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지만, 책 내용은 책 제목과는 반대로 편안한 죽음은 없다는 내용이다. 나 역시 인간에게는 절대 편안한 죽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란 두려워 피하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는 삶에 대한 생각이 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맴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기에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에, 지난 나의 삶에 대해, 앞으로의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