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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Jan 31. 2023

남쪽 나라에서 만나

[West] 夢中人


남쪽 나라에서 만나



남쪽 나라에서 만나


그녀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을 기억해

표정도, 목소리도, 맥락도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저 문장을 들었음은 분명하니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가

오늘은 남쪽 나라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눈을 감아


촉각이 사라진 듯한 세계에서

어느 해변에 직선으로 누워있다

모래도 아닌 것이, 바람도 아닌 것이, 귀를 간질이는

아릿한 기운에 몸을 일으켰고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그녀가 서 있지

휘날리는 꽃잎과 햇빛은 찬연하게 그녀의 몸을 비춰


한 발, 두 발,

다가가면

그녀는

1반 교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현이의 얼굴이 되었다가

습기 찬 반지하 옆방에 살던 누나의 얼굴이 되었다가

어제 보았던 버스 옆자리 아무개의 얼굴이 되었다가

눈, 코, 입의 기묘한 배열만 남아있기도


무수히 많은 하루를

선명한 물음과 답 속에서 보내는 내가

흐린 인영의 손 흔듦에 왈칵 마음이 터져

세게 안으려 하면

어김없이 꿈에서 깨


사랑인 걸까. 사랑의 시작인 걸까. 끝인 걸까.

매일 새로 만나

혹은 다시 만나


기억이 아닌 기록이 남는 나날 중에

정거하지 못할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한 그녀를 찾으러 가는

내 여정은

어둠 속 서성임으로 시작해


오늘은

남쪽 나라에서 만나



Fin.

From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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