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 “내가 이번에도 나빴습니까?“
경찰이 등장하자 아저씨는 돌연 언성을 낮추어 우리 네 명이 자신을 집단 폭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아저씨가 완전히 미쳐버린 건 아닌가 보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계단을 올라 아저씨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본 두 명의 경찰관 중, 나이가 많은 쪽은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니 너희가 앞으로 문을 잘 잠그는 것이 어떻겠냐’는 충고를 했다. 아저씨는 어떤 병원 혹은 시설에서 금방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으며, 자신의 부모님 집 문을 잠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우리의 또래로 보이는 쪽은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같은 이유로 이후 보복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니 잘 생각을 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우선 아저씨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우리를 노려보며 경찰차에 오른 아저씨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바쁜 일정으로 이미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참이었다. 나는 간만에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별안간 무언가 잔뜩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목덜미를 잡아채인 듯 순식간에 잠에서 떨어져 나왔다. 굉장한 소음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리고 있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발로 무언가를 연달아 힘껏 걷어차는 소리, 언젠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며 갈라지는 익숙한 목소리, 아 아저씨. 아저씨가 이번에는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분명 경찰서를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일 테다. 현관문을 제대로 잠그고 잠에 들었던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태가 파악되자 순식간에 긴장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전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날 밤 아저씨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경찰들은 그렇다 치고, 앰뷸런스는 도대체 무슨 일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림자 사이로 비치던 기이한 눈빛. 방문을 열면 당장에라도 아저씨가 현관을 부수고 들어와, 커다란 가방 속에 있던 것들 중 하나를 골라 순식간에 나를 찌르거나, 베거나, 자르거나 할 것이라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엔 공연히 앰뷸런스에 빈 들것을 실을 필요가 없겠군. 어지간한 위기 상황에 대처가 빠른 편이라 생각해 왔지만 그 순간만은 이성이 작동을 멈춘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문 너머의 동향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나는 아마 인생에서 가장 막막하고 공포스러운 순간 중 하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이웃이 분명한 복수의 의지를 가지고, 침대에서 채 몇 걸음이 되지 않는 현관문을 부술 듯 발로 차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의 소란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의 신고로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경찰차를 탄 그날 이후로도, 아저씨는 꾸준히 우리집 현관을 찾아왔다. 어느 날은 잠이 들 무렵 이제는 꼬박꼬박 잠가 두는 손잡이를 마구 돌렸고, 어느 날은 늦은 밤 돌아온 집 앞이 엉망이 되어있는 식이었다. 그 즈음부터 한동안은 작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설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소리 하나가 집요하게 벽을 넘어 귀를 울렸다.
쿵 쿵 쿵.
뛰어다닌다거나 운동을 한다기에는 기이하게 규칙적이며 확고한 의지가 담긴 소리. 나는 이것이 의도적으로 벽을 타격하여 발생하는 소리임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보다는 무엇으로, 벽을 울리고 있는지가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아저씨가 시도 때도 없이 열성적인 태권도 지르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 소리는 분명 머리를 벽에 힘껏 받는 소리다. 양 주먹이라기엔 타격의 간격이 묘하게 길고, 저렇게 둔탁한 소리가 나기도 힘들 거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전에는 들리지 않던 절규와 같은 음성도 사이사이 들려오는 듯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잠재적 침입자의 기이한 취미를 매일 밤 감상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꽤나 강력한 공황장애를 얻게 되었다. 단순히 그 일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이사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는 생활을 꽤나 오래 지내왔으니까.
공황장애와 경미한 우울증. 무시무시한 이름의 그것들과 함께하는 삶은 기대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아무 곳에나 주저앉기의 달인이 되었다. 사람이 모두 내리고 불이 꺼진 종착역의 지하철, 서울 각지 번화가와 골목의 차가운 보도블록, 그리고 직접 장판 스티커를 붙인 작업실의 바닥 위로 수없이 주저앉고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부끄럽지만 그중 몇 번은 곧 죽을 사람처럼 끄윽 끄윽 하고 울기도 했던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보이지 않은 무방비의 상태를 낯선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생각보다 더욱 기묘한 경험이었다. 잠시 아래를 향하는 듯하다 빠르게 제 자리를 찾는 눈동자들과, 뻔한 이야깃거리를 싣고 소리 없이 멀어지는 웅성임. 전염병을 옮기는 좀비라도 마주친 듯 숱하게 빗겨 지나던 ‘이상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은 막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현실적이며 돌발적인 발작은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빈도가 줄어들지 않았고, 나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최소한의 일정을 소화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이상하게도 아저씨를 자주 떠올렸다. 오분에서 십오분가량 이어지는 그것에는 나름의 순서라고 해야 할까, 어떤 단계가 있다. 난데없이 손과 발이 흥건해지고, 작은 자극들이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거스르는 듯싶다가 어느 순간 펑. 그리고 나서는 아무도 시킨 적 없는 생사를 건 모험이 시작되는 식이다. 컨디션에 따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당장이라도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할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올것 만 같은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마침내 심호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암울한 생각을 하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은 잠깐의 고요가 찾아온다. 일단 다시 정상적인 호흡을 하며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왜 이런 것에 안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투정이 교차하고, 불현듯 스스로를 둘러싼 현재의 장면이 분명하게 인식되며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감각을 온 피부로 느끼는 단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마다, 가장 먼저 아저씨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의 가장 큰 적이자 어쩌면 유일한 동지로서. 의사 선생님의 진단보다 나의 판단력이 조금 더 흐려진 것일 수도 있지만, 아저씨 이상으로 휘청임과 주저앉음을 잘 이해하고 있을 사람을 떠올릴 수 없었다.
“사람이 마음이 아프면 그럴 수 있는 거야.”
어떠한 해결 방안이나 조언 없이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아저씨에게도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있었을까. 불면의 밤을 보내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한 번쯤 제대로 아저씨를 마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삽시간에 온 세상을 집어삼킬 만큼 커져버린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에게 왜 그러느냐고,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살아가야 했으며 나는 왜 이렇게 되었냐고. 다소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그러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꼭 아저씨여야 했고, 그림자가 아닌 눈을 마주하고 확인해야 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나를 이해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