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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Mar 25. 2023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West] 아무렴 어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데.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여기는 우루무치와 카라마이 사이 어느 구름 위입니다. 이름 모를 도시의 조감도를 내려보다 그동안 제가 경유하지 않고 지나쳐온 도시의 이름들을 떠올립니다. 헤아리지 못한 마음과 무감각하게 작별한 세계의 숫자를 셈하다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앞 모니터 모서리에는 비행의 끝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7h 29m. 쉽게 어림할 수 없는 시간의 질감에 문득 외로움이 사무칩니다. 이대로 경로를 이탈하여 공중만 떠돌다가 말지라도 놀랍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단잠에서 깨어나 짧은 어둠을 누리던 제 손을 꼭 쥐어주던 당신의 온기가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 위로 다른 손을 포갠 채 낮은 자세로 누워 있다보면 마치 당신이 모든 소리를 거둔 듯 고요하고 평안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따스히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괜찮다’ 가만히 소리 죽여 웃었습니다.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던 충동을 고백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한히 배회하는 삶에서 누군가를 해방시켜 줄, 완벽한 구원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결코 다다를 수 없을 해방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선생님 역시 당신 몫의 무게를 지러 어김없이 일어났습니다. 떠났습니다. 파장은 일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어둠의  수면에 비친 달은 여전히 둥글게 빛을 냈고, 저는 그 달에 단출한 소원을 빌었습니다. 번번이 미끄러지지만 달이 지구 한가운데로 떨어져 세상을 뒤엎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어떤 가족의 지붕 위일까요. 층층이 쌓인 구름 사이에 들어온 건지 자그맣게 난 창을 내다보아도 무엇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조금 전 빠져나온 줄 알았던 구름을 다시 만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매번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에 익숙하신지요? 일방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과의 재회는 낯설지 않습니다. 이 비행의 끝도 어쩌면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다만, 선생님께 배운 건 그 순간 제멋대로 움트는 불안을 다루는 법입니다.


말을 만들고 옮기고 덧붙이는 이들로부터 생겨나는, 시선을 외면하고 허물고 가리는 이들로부터 피어나는, 만연한 불안에 당신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롯이 사랑할 대상을 사랑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무엇을 사랑할지, 어떻게 사랑해낼지 아는 사람에게 불안이 뿌리내릴 땅은 없었습니다.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데. 오 년 전의 사내도, 어제의 저도, 내일의 당신도, 같은 원리로 기우는 석양을 바라볼 수밖에 없듯 선생님이 가르쳐 준 사랑의 법칙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흐르든 제가 어떤 도시에 착륙하든 그건 무관할 겁니다.


언젠가 다시 선생님과 마주 앉아 그간의 기나긴 시간을 나눌 날을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당신이 제게 준 사랑을, 그 사랑의 견고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해가 스러지는 수평선을 바라보아도 슬프지 않습니다. 알지 못하는 구름 너머의 세계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립습니다.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있겠습니다.



Fin.

From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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