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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Apr 04. 2023

지나간 것들에 대하여

[East] Let me photograph u in this light


지나간 것들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 과거에 대해 특별히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왔다. 과거라는 것은 무엇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일이며, 현재의 권한으로 간단히 없던 일이 되기도, 난데없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인 듯 부풀려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때 일어난 일은 그런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니, 모름지기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당당히 맨발로 현재의 땅을 딛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며, 나는 은연중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한껏 고양된 현재의 시선은 습관처럼 눈앞에 놓인 것들을 확인한다. 오전 1시 41분, 아르바이트와 작업실을 거치는 익숙한 일과 끝의 샤워와 그 후의 새것 같은 공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 손끝에 감기는 키보드 소리와 입술에 남은 위스키의 피트향, 제법 공을 들여 배치한 조명과 가구들이 주는 안락함, 그리고 잠에 들기 전 읽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따로 마련해 둔 책 같은 것들. 직관적인 감각과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가 방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면 불쑥 휴대폰을 밝혀오는 ‘일 년 전 오늘의 앨범’ 같은 것에 감상적인 시선을 보낼 틈은 줄어들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바람직한 자세라고 거창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만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수많은 이들에게 흔히 그러하듯, 성긴 결론으로 쌓아 올린 삶의 균형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작은 혼란에 뿌리부터 휘청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이별 중 하나였다. — 오래 내리던 비가 말끔히 개인 어느 날, 어떤 예고도 없이 나의 오랜 은신처가 자취를 감추었다. —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면 꼭 한 번씩 들려 담배를 태우던 작은 공터. 엄밀히 말하면 장소는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내쪽에서 이전의 감흥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반짝이는 햇살과 그 사이를 춤추던 나뭇잎, 그리고 맨들맨들하게 손이 탄 나무 벤치는 모두 제 자리에 남았지만 그뿐이다. 넘치게 흐르던 환대의 기운과 온기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미 온전한 풍경 속에 나라는 존재가 눈치 없이 얹어진 듯, 장소와 나 사이에는 한없이 어색한 기운만이 감돌았던 것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인지, 내 쪽에서 건넸던 것인지 알 수 없는 흐릿한 문장 하나가 의식을 거칠 새 없이 허공을 울린다. 물론 문장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온도를 띄고 있다. 어쩌면 이 문장은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한결 어울리는 것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대상을 눈앞에 두고도 거듭 보고 싶다는 소망은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사랑의 말이 아니라, 이전에 보았던 무언가를 같은 대상에게서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을 때 스스로 얕게 읊조리는 종류의 고백인 것이다. 나는 실수로 잃어버려선 안될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이 되어 이전의 사진들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못내 그리워하던 풍경은 다름 아닌 현재의 내가 자리한 바로 그 장소에 토씨 하나 틀림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이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고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언제라도 훌쩍 떠나버릴지 모른다면, 현재라는 것은 그 곁만을 쫓아 살아가기에 너무나 불완전한 모양을 가진 것은 아닌지. 애초에 오랜 기간 수없이 같은 장소를 향하게 한 것은 정말 현재가 시킨 일이 맞는 것인지. 어쩌면 나는 줄곧 최초의 강렬했던 감상을 그리며 그저 습관처럼 그 장소를 찾았을 뿐일지 모른다. 그리고 같은 크기의 기쁨을 다시는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손쉽게 단념해 버린 것일지도.


“조만간 보자.”


졸업실 날의 짧은 인사 이후 되돌릴 수 없이 멀어진 친구, 최근에야 아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초등학생 시절 수건과 솜으로 직접 만든 곰돌이 인형과, 소중했던 사람에게 받은 편지들을 모아두던 작은 상자들. 이별의 순간조차 깨닫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온 것들을 떠올린다. 한때 무척이나 소중했지만 일방적으로 삶에서 떨어져 나가 끝내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 것들. 이별을 하고, 이별을 당하고 또 이별을 마주하는 일. 현재라는 시간은 어쩌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별의 서사를 이루는 장면들의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지 모른다.


‘찰나’라는 단어를 되뇌어본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내가 기대하던 것보다 한결 짧은 시간일 수 있다는 것. 손가락의 즉각적인 움직임에 따라 화면의 글자들이 부지런히 뒤로 밀려나듯, 현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무언가를 의식함과 동시에 그것의 알맹이는 뒤편으로 밀려나고 그 후로는 잔상과 같은 것들이 한동안 지속될 뿐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현재만을 추구하는 삶이란 마냥 내어놓고 자랑할만한 이야기는 되지 못할지 모르겠다. 부쩍 이별이 잦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 밤에는 특별히 시간을 들여 위스키를 음미해야겠다. 이 역시 어느 날 불쑥 과거의 한 장면이 되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므로.


결국 나는 지나온 것들을 바라본다. 제대로 된 작별의 한 마디 없이 훌쩍 떨어져 나가 속절없이 뒤편으로 멀어진 일들. 한때 나를 이루던 장면들을. 어쩌면 나는 이제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온당한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의 끄트머리나마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거나, 지나간 것들에 얽매여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날들을 다그치던 서투름에 용서를 구한다. 단순 미련으로 여기기에 우리는 너무 잦은 이별을 하고, 오늘은 너무나 쉽게 어제가 되어왔으니까.


뜻밖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발견할 때면 나는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내 들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껏 끊이지 않고 쌓여온 사진들이 몇 가지의 기기를 넘치게 채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자주 꺼내어 살펴보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일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어떤 장면을 바라본다는 것. 구도를 잡고 초점을 맞춘 후, 잠시 숨을 멈추어 그것을 가장 기억하고 싶은 형태로 담아내는 과정 자체에 그 의미가 있다. 순간을 정성 들여 온전히 감상하는 일. 나는 이것이 현재를 기리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나 쉽게 지나가 버릴 것들에 대한 투정에 가까운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머물러 줄 수는 없겠느냐고. 나는 아직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Fin.

From th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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