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훌륭하지 못한 모놀로그를 지켜보는 일에는 상당한 힘이 든다. 여간 고역이 아닌 짓을 사서 할 사람은 몇 없다. 고로 이름 없는 여정은 고독하다. 언젠가 바라보았던 어둠 속 남자를 떠올린다. 그의 뒷모습은 거대하다. 바람이 부는 능선을 넘어 굽이치는 개울을 홀로 건너는 걸음. 계속하여 내딛는 그 걸음에는 쉽게 넘볼 수 없는 대의가 담겨 있다. 동이 트기 전까지 반드시 다다라야 하는 목적지를 향해 남자는 쉼 없이 움직인다. 끊임없는 폭격에도 발을 멈추지 않는다. 포탄이 빚은 굉음과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고, 부푼 시체와 진 꽃들로 덮인 물웅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들판 위로, 하늘 가운데로, 수면 아래로 내달리는 모습에 덩달아 숨이 멎는다. 자못 숭고한 그의 여정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마침내 끝에 다다른 남자는 잠시 평화가 깃든 평원에 비로소 몸을 뉜다. 고목 한 그루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물기 어린 눈빛이 클로즈업 되고, 나지막한 음성 위로 비행기 하나가 상공을 가로지르며 하얀 선을 긋는다. 이내 암전이 찾아든다. 몸을 일으켜 복도를 돌아 나오니, 얼룩진 통창으로 신림역 사거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숨 막히는 여정이 펼쳐지던 남자의 공간과는 퍽 다른 모습의, 광활한 나의 평원이었다.
결국 어디로 가는가. 늘 우리의 끝이 궁금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길이 이어지기 마련인 사거리가 유달리 크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경우와 마음에 따라 그 아득함은 패배감으로 번졌다. 기어코 두려움이 되어 맺혔다. 휘영청 떠오른 달을 벗 삼아 신대방동의 오르막길을 기어오르다 종종 옛 생각을 한다. 해리포터의 마지막 이야기, 7권만 오매불망 고대하던 아이를 떠올린다. 아이가 동경하던 대단한 여정을 떠올린다. 그 아이는 지팡이가 아닌 그림붓으로 주문을 연습하며 제게도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들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지 않는 입학 고지서를 기다리던 밤에는 EBS 라디오에서 들은 ‘Simon & Garfunkel’의 「Scarborough Fair」를 틀었다. 끝을 모를 억새숲을 헤치며 나아가는 어떤 일동의 이미지를 그렸다. 호그와트는 못 가더라도 언젠가 꽤나 그럴듯한 미션을 부여받아 숙명 같은 여정의 선두가 되지 않을까, 환상을 지녔다. 정작 7권 『죽음의 성물』이 출간된 해의 겨울, 적지 않게 자라난 아이는 예상과 다르던 전개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현실에 발이 닿지 않는 여정 같은 건 더더욱 함부로 꿈꾸지 않았다. 한때 론과 헤르미온느의 얼굴이었던 아이의 옆자리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얼굴로 채워졌다. 그렇게 내가 되었다.
세상을 뒤바꿀 만한 사건이나 변화는 없었지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매 순간 존재했다. 빨간책 안에 복잡하게 얽힌 인수분해였던 그것은 정교하게 짜인 관계와 오해가 되었다가, 마음속 혼자만의 다툼이 되기도 했다. 어느덧 『죽음의 성물 2』가 영화로 개봉한 일도 십 년이 더 지난 이야기가 된 지금은 브랜드 전략, 다른 이들의 계약을 위한 서류와 증빙, 떠나고 싶은 충동과 충분치 못한 용기 같은 문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마음이나 오답투성이인 선택을 반복하다 망연히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서둘러 정신을 차려보면 각각의 문제들은 또 다른 형태로 변해 있었고, 어찌어찌 살아남겠다는 본능 하나로 나 또한 모습을 탈바꿈하며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악10번이 역으로 돌진하던 아침, 내내 잊고 지내던 「Scarborough Fair」 멜로디가 떠올랐다.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는 찰나,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 머리를 숙이며 듣는 서늘하고 구슬픈 멜로디가 조금 슬펐다. 신림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마치 경쟁하듯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표정 없는 얼굴들로 4번 출구를 향해 달렸다. 추월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졌다. 누군가는 실패했고 누군가는 앞지르기를 성공했다. 그 사투에 어둠 속에서 질주하던 남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스크린 속 비장한 사운드트랙은 「Scarborough Fair」의 마지막 코러스와 24시 카페에서 아침 일찍 튼 아이돌 노래로 대체되어 있었다. 합이 맞지 않는 음악을 배경 삼아 그들의 몸은 기울어 지하로 들어갔다. 연속적인 움직임은 흡사 총탄에 넘어지는 병정들의 몸부림처럼 필사적이었고, 한편으로는 거대해보이던 남자의 여정보다 더 간절해보였다. 길고도 무료한 방황일지 모를, 이 무수한 전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의 당위성을 찾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삶에 대한 회의감에 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름과 마음을 꼭 쥐고 싶은 충동. 오래된 빌라 옥상에 적혀 있다 언젠가 건물과 함께 허물어질 이야기, 설사 그뿐이더라도.
내 삶은 어쩌면 정말로 별 볼 일 없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그마저 벅찰 것이라는 예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은 영 쉽지 않다. 뒷걸음질 치는 사람 하나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신림역 사거리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각자의 자리에서 중력을 견디며 조종간을 부여잡고 있는 파일럿의 행렬처럼 보인다.그러다 문득 우리 삶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 삶은 자기 존재의 증명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투쟁이 아닐까. 우리 모두 빈칸으로 태어나 다다를 목적지도, 쌓아야 할 구조물의 설계도 제대로 정해진 것 없는 존재들이니. 도식 아래 그려진 세계가 아니라 마땅한 가치와 필요가 부재한 인물일지 모르기에, 그것을 마련하고자 아등대며 오늘도 자기만의 여정을 이어가며 사투를 거듭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이 쓰여진다. 때문에 멀리서 보기엔 지지부진한 하루의 반복일지라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망하다. 적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그렇다. 넘어뜨려야 할 것이라면 오로지 켜켜이 쌓인 과거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오늘과, 알 수 없어 괜히 조급해지는 미래뿐인데도. 어느 순간 믿을 수 없게 된 자기 자신처럼 형체 없는 적에게 지고 돌아오는 날이면 일종의 수치심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면 관악산에 드리운 구름의 음영은 본디 관악의 기슭이 그런 색인 것처럼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어떠한 부름이나 방향 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무한한 여정은 고달프다. 그 고통을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대로 멈추고 싶지 않아 변변치 않으나, 다만 진솔한 마음의 열거만을 반복한다. 부서지고 쥐어박히고 헐떡이면서도 우리는 행복하자고. 마음속 여정을 잊지 말고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고. 차갑고 광활한 우리의 평원 앞에서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제 몫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달라질 수 없겠지 싶은 무기력 속에서도 저마다 제 나름의 지도를 지키며 걸어간다면,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황무지를 지나쳐 자포자기의 마음을 전복시켜 나아간다면, 흘러 흘러 끝이라 말할 수 있는 곳에 닿지 않을까. 숭고한 여정을 마친 남자처럼 잠시나마 몸을 뉠 수 있는 곳에 도착하고, 한 그루 높다랗게 서있는 나무에 기대어 마침내 우리도 숨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이 길고 지난한 증명은 끝끝내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이 오고 가는 여정 속 고꾸라짐과 노력, 마음의 쓰임이 어디로 가 닿을지 궁금한 지금이다.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호그와트 입학 고지서를 기다리던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자 한다. 가슴속 낭만을 되살려서 오늘의 무망한 기분이 곧 삶 전체에 대한 허무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서는 일. 이것만이 오늘 지켜낼 수 있는 전부이니까.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찬 마을버스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달리고 있다. 지하철역에 도착한 사람들이 앞으로 앞으로 걸음이 내딛는다. 멀리서 고동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비행기 한 대가 신림역 사거리 위를 지난다. 사람들의 행렬과 함께 백과 흑의 직사각형을 가로지른다.
Fin.
From the 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