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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May 14. 2023

파도 위에서

[East]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파도 위에서


A


막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당시 자주 모임을 가지던 가족의 막내. 우리 세 명의 아이들은 키를 훌쩍 넘기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었을 거다. 모처럼 기대했던 여행지에서 어른들의 취기 가득한 이야기 소리나 들으며 하루를 보내야 했으니까. 이런 저런 소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놓지만 금세 견딜 수 없이 따분해지는 기나긴 소란과 시끄러운 웃음들. 그런 시간을 아이들이 가만히 참아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얼굴을 때리던 차가운 빗방울을 선명히 떠올린다. 우리는 새카맣게 넘실대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는 구명조끼 하나에 의지한 채 손발을 젓는 우리들을 사방으로 마구 흔들어댔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 조차 쉽지 않았지만,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밀어내면 밀어내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허락된 만큼의 거리를 나아가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파도를 거슬러 힘차게 수영을 하기도,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떠다니기도 하며 끊임없이 눈앞에 주어지는 파도에 감탄했다.


어지러이 이어지던 표류의 중간. 파도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자면 이따금 사방으로 솟아오른 파도의 사이로 발이 땅에 닿을 만큼 움푹 패인 공간이 만들어지곤 했다. 잿빛 하늘과 잊고 있던 모래 바닥의 감촉, 그리고 보호하듯 나를 감싸는 파도의 벽 외의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작은 은신처. 그 속을 머물 때면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장소에 놓여진 듯 한없이 마음이 놓였다.


B


‘삐빅 -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하루의 나머지 반절, 그 시작을 알리는 소리엔 별다른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그저 마스크를 착용해 주십사 넌지시 권유를 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건 이미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정이 담긴 말이란 많든 적든 주의를 끌게 마련이니까. 지하철의 안내 멘트에까지 일일히 신경을 써야 하는 세상은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빈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을지 정도의 문제 만으로도 현재의 고민거리는 넘치게 충분한 것이다.


의식의 스위치를 내려둔 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좇는다. 긴 통로를 지나, 마침내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르면, 무리의 일원들은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신속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 두 줄로 나누어진다. 지하철 플랫폼의 에스컬레이터에는 암묵적인 이용 방식상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볼일이 급한 사람은 좌측을 이용하되 중간에 멈추지 않을 것,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른편에서 가만히 앞사람의 뒤통수나 휴대폰을 바라볼 것. 항상 있는 힘껏 걸음을 내딛던 나는 어느 날 부터인지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무리의 줄에 서게 되었다. 그것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의 머리가 바쁘게 일렁인다. 아마 오늘도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A


제멋대로 범람하는 시간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아도 나만이 속절없이 더디게 나아가는 듯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아직도 그 날의 파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만은 그 날 이후 줄곧 왔던 방향으로 돌아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의식을 집중하면 금세 그 날의 파도를 느낄 수 있다. 수없이 일렁이는 파도와, 시야를 가리며 쏟아내리는 빗방울, 모든 것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길어진 팔다리를 내저으며, 깊은 바다 속을 끝없이 나아간다. 훌쩍 자라난 마음은 더이상 허락된 거리만을 나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조금만 더 먼 곳에 닿기를 바라고 있다. 파도는 더이상 나에게 이전과 같은 친절을 배풀지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몸을 던졌던 해변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쉬지 않고 균형을 흔드는 움직임이 나를 압도한다. 머지 않아 조금도 나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면 나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마는 걸까. 문득 구명 조끼를 입었던 사실을 떠올리지만, 이미 힘이 잔뜩 들어간 몸은 쉬이 말을 듣지 않는다. 느긋이 몸에 힘을 푸는 방법같은 것은 어린 시절과 함께 영영 잊혀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젓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파도따위는 모두 상상일 뿐이라고, 너는 더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고 되뇌인다. 하지만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밟고 선 땅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선명히 느낀다.


B


종점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신경질적으로 귀를 때린다. 돌아오는 길었던 것인지, 집을 나서는 중이었던 것인지 잠시 헤메이지만 이내 갈피를 잡고 계단을 오른다. 늦은 저녁을 먹고, 더부룩한 잠을 자고 나면 다시 집을 나서고, 최소한의 벌이를 위한 일들을 마친 후 다시 작업실을 향한다. 그리고 이내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는 거다. 그리고는 다시 몇 번의 아침 …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흩날리고, 이내 눈이 덮여오지만 더이상 자라날 것이 남지 않은 나에겐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 감은 눈을 뜨고, 마지막 지하철의 종점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에도 얼마간의 나아감이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A-B


고요한 시간의 틈새, 어린 날 잠시 머물렀던 파도 속의 은신처를 생각한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뉘어 어젯밤 접어둔 이야기에 몰두하는 찰나의 시간, 잠시나마 그곳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꿈처럼 얼굴을 적시는 빗방울과 목적없는 표류의 감각을 떠올린다. 나아가고 뒤쳐지는 일 따위 다른 세상의 일인 듯 한없이 무뎌지게 될 평온의 순간. 황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 쥐어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공연히 허공에 손을 내저은 뒤 찾아오는 멋쩍음 뿐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어쩌다 기약도 없이 제자리를 허우적댈 뿐인 처지에 놓이게 되었나. 그 모든 혼란의 와중에도 파도는 쉼없이 귓가를 때리고, 전신의 균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저 뒤편으로 착실히 시간을 밀어내는 중이다. 파도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쪽이다.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쪽이다. 물살에 떠밀려 이미 보이지 않게 된 것들과, 닫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묻혀 쉬이 사그라들고 말 날들. 어린날의 기대와 경탄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그 모든 피로와 뒤척임은 수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끝내 저 뒤편으로 멀어질 테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물살에 다시금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나아감이란 온전히 나의 몫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지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간의 셈법을 익혀야 하는 것일지도.


규칙적으로 넘어가는 책장의 단어들을 쫓는 시선이 더뎌진다. 온종일 이어지던 발버둥을 멈추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쏟아지는 잠의 힘을 빌어, 나는 마침내 찬찬히 헤엄의 속도를 늦추어 본다. 어깨와 다리의 힘을 조금씩 풀어내고,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마침내, 독서등을 끄고 눈을 감는다. 내일 아침으로 끝이 점쳐진, 짧은 죽음과 같은 잠이 곧 시작 될 참이고,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헤엄이 이어질 예정이다. 오늘 밤은 조금 잠잠해진 바다 위를 가만히 떠다니는 꿈을 꾼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빈 자리에 앉아 잠시 쉬어갈 수 있기를, 모쪼록 조금은 평화롭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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