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는 네덜란드에서 나온 말이 맞다? 아니다?
‘네덜란드의’ 형용사로 쓰이는 Dutch(더치)라는 단어는 사실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다” 의 ‘Dutch pay’는 엉터리 한국식 영어이며 제대로 된 표현은 ‘go Dutch’ 또는 ’Dutch treat’라고 한다. 우리의 익숙하지만 틀린 표현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더치’의 의미가 깊게 알게 된다면 부정적인 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지난 몇 달간 내가 몸소 경험한 바로는 긍정적인 면으로 굉장히 합리적이며 논리적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정 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본인이 먹은 음식값은 본인이 지불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첫째 날은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간단한 소개 개념의 OT정도였다면 둘째 날부터는 피해 갈 수 없는 진짜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네덜란드처럼 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익숙했을 학습방식, 첫날부터 말 그대로 ‘토론’이 주를 이루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주입식 교육이 익숙하고 수업 중 궁금한 사항이 많아도 흐름에 방해될까 ‘입꾹’을 유지하다 수업이 끝나서야 주변친구들에게 물어 모르는 것을 해결해 오던 내 방식은 말 그대로 '옛날 한국사람의 교육 스타일'이었고 그래 왔던 내가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재미있는 기회였다. 높은 어학 점수가 KLM항공의 가장 큰 채용 조건이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교육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던 것이고 나아가 실질적으로 함께 일할 더치크루들과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상황을 예측했고 이전 항공사 역시 다국적 동료들과 근무했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내 생각을 자유자재로 그것도 수업시간에 표현해야 하다니.
입사 전 영어공부를 좀 더 하고 왔었어야 했는데...라는 그때로 다시 돌아갔더라도 지키지 않았을 의미 없는 후회를 해보았다.
자칭 생존영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는 조금 옛날사람의 나는 같은 한국인 동기들의 헉소리나는 영어실력에 두 번째 놀라움을 느꼈다. 예전에 비해 영어는 필수적인 언어가 되었고 내가 자라나던 시절에 비해 요즘세대는 예전보다 자연스러운 영어권 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국제학교와 오랜 외국생활등의 남다른 배경을 둔 그들(한국인 동기)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남다른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나만의 자극제가 되었다. 교육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자 조용히 침묵하는 것을 선호했던 나는 스스로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인스트럭터(강사)들은 조용히 있는 것을 오히려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다 여겼고 끊임없이 학생 각자의 경험담과 견해들을 궁금해했다. 내가 고수했던 방법대로 '입꾹'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여기서 나는 이해도가 떨어져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소통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일 차 정도 다른 신입의 더치크루들과 그룹을 나누어 함께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때의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가 있었다. 주제는 어떤 특정나라를 정하여 그 나라에 특징에 대해 마인드맵을 만들어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함께 발표자료를 만들어가며 서로의 생각을 토대로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느라 주어진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토론문화로 자라난 더치들 사이에 있으니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은 나조차도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다시 한국동기들과의 수업시간, 동기 중 한 명이 강사에게 물었다. 혹시 내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어 실수를 만들면 어떻게 해? 그런 것들이 두렵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는데 " 너는 절대 틀리지 않아 “라고 말해주던 현지 강사, 그러면서 ”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 성장해 나가기에 실수를 두려워마 “라고 덧붙여 말했다.
순간 내가 겪어온 사회의 배움을 해나가는 공간에서는 한 번도 경험치 못한 뭉클함과 감동을 느꼈고 내가 즉 우리는 이 환경에서 매우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존엄성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한국인 동기들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곳은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가 비난의 화살의 되어 돌아오는 곳이 아닌 실수라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러주는 곳이었고 그런 실수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해 나갈 수 있으므로 오히려 실수를 환영하는 곳이었다.
또 다른 좋았던 교육방식은 눈치 보지 않고 무언가를 오물오물 먹어가며 또는 마셔가며 수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늦잠을 자서 조식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참 걸리는 점심시간까지 허기가 져 집중이 안될 수 있는데 그런 날에는 굳이 동의 구할 필요 없이 먹고 마시며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껌처럼 수업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면 간단한 스낵이나 과일, 야채 등 모두 가능하다. 수업참여 시 복장 또한 교육생이라 할지라고 최소 세미정장과 구두착용을 반드시 유지해야 했던 이전의 회사들과 달리 이곳 KLM항공사에서는 편안한 청바지와 운동화차림이 가능하다는 것도 참으로 합리적이고 좋은 점이었다. 단지 슬리퍼나 끈이 있는 샌들 종류는 비상착륙 탈출 훈련 같은 안전과 관련된 상황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어 신을 수 없지만 편한 복장과 신발이라니.. 매일 교육가는 발길이 편하고 즐거울 수밖에 없던 다른 이유다. 교육생 시절이 끝나고 항공기 승무원으로 재직 중인 지금도 일하는 중이지만 언제든지 배고프면 먹을 수 있는 자유와 밤시간 장거리 비행이라 잠조절이 어려운 순간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파워냅”을 가질 수 있는 자유도 아마 KLM항공사에서만 누릴 수 있는 승무원으로서의 유일무이한 인간적인 혜택일 것이다.(물론 근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결론은 지금껏 느껴온 KLM네덜란드항공 더치문화는 참으로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다. 직설적이라고 하는데 도움 되는 팩트라면 맞는 말이기에 오히려 에둘러 전하기보다 직설적인 게 낫다. 외항사의 경험이 있었지만 매번 토론과 발표를 중심으로 학생 스스로가 참여해야 하며 선생님은 필요하거나 궁금한 부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수업방식은 사실 적응하기에 시간이 조금 필요했었다. “대화”라는 걸 정말 중시하는 환경_그만큼 개인의 의견과 생각을 궁금해하며 항상 존중해 준다. 모든 것은 각자의 결정과 책임이 따르도록 그러나 늘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며 굉장히 자유롭게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회사, 지극히 혼자만의 견해들이긴 하지만 덕분에 감정선이 예민한 나는 그 사소하고도 옳은 사실들이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해서 몰래 울컥할 때가 많았다. 윙데이까지 여전히 어리바리만 유지하다 졸업했던 나지만 이러한 합리적인 더치문화의 경험들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나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