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최민경, 영어로는 Minkyoung Choi이다. 한국에서 일반 직장을 오래 다녔다면 ‘대리’ ,
‘부장’과 같은 직급이 부여되었겠지만 요즘 회사 내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명칭은 밍키온니다.
옛날 옛적 영어학원을 다닐 때 영어이름이 하나씩 있어야 했는데 생뚱맞게 ‘Violet’이라는 이름을 선생님께 추천받아 잘 쓰고 다녔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와 맞는 이미지란 말에 그냥 괜찮은 거 같아서 그리고는 이유 없이 좋아졌기에 문제없이 잘 쓰고 다녔었다.
아마도 당시 목소리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이라 나도 모르게 홀렸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카타르항공에 입사를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기소개시간, 우리의 담당강사가 먼저 출석부의 진짜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는데 내 이름을 부를 때 ‘Mink~young’ (밍크영)이라고 발음을 연결하지 않고 띄워 부르지 않는가. 민경이라는 한국인으로서의 발음이 익숙했었는데 외국인의 발음으로 나뉘어 불려진
이름이 신선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생뚱맞은 ‘Violet’ 말고 원래의 이름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young’의 발음은 쉬웠던 반면 그들에게 애초에 없던 ‘kyoung’(경)의 발음은 참으로 어렵고 다양하게 느껴졌다.
'키영’ , ‘쿵’ , ‘쿙’ 등등 각양각색 발음에 외우기도 쉽지 않았기에 ‘oung’를 빼버리고 “Minky”라 쓰기로 했다.
편안하고 친근한 개명? 덕분에 29살 이후 민경보다는 밍키로 불려진 시간들이 더 많아 요즘은 밍키가 좀 더 편한 거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원래의 내 이름에서 변형 됐기에 영 연관성 없는 ‘Violet’ 보다는 불리기에 민망하거나 오글거리는 일이 없어서 좋다.
이름의 어감이 친근하고 외우기 쉬워 외국인에게 ‘My name is Minky’라 소개할 때마다
어김없는 멘트인 ‘Sounds cute’를 들으며 어색할 수 있는 첫 만남을 웃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요즘의 회사에서도 쉽게 읽고 불려지는 이름 덕분에 다른 한국인 동료들보다 내이름이 더 많이 들리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나쁘지않은 것 같다.
외항사에 근무하면 알 거다. 매일 멤버가 새롭게 교체되는 비행에서 10명 가까운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한국인들은 ‘언니’ , 필리피노들은 ’ 아떼‘ , 아라빅들은 ’ 하비비‘ 등 급할 때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서로를 부르는 우리끼리의 통명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 ‘경’처럼 외국인들에게 ‘어’ 발음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언니 대신 ‘온니’라는
발음으로 익숙하게 불려졌다. 어떤 사람들은 버젓이 이름이 명찰에 있음에도 언니로 불려지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하기도 했지만 익숙지 않은 발음을 구사하며 나를 불러줌이 나는 그저 귀엽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의 표현이라 느껴져 좋았다.
신입으로 입사한 KLM네덜란드항공에서는 어느덧 동기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왕언니가 되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나이가 많지?’라는 생각과 한 살이라도 어린 친구들이 부러웠다기보다 다시 또 많은 동생들이
생겨서 참 좋았다. 한국의 사회생활을 통해 조직의 상하관계도 익숙했었고 사실 크게 게의치 않았던 나지만
괜한 숫자에 불과한 나이로 동료나 지인들에게는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신입이었기에 동등한 시점에 있기를 원했고 그래서 몇 년의 터울이던지 간에 동기들과는
편하게 존대 없이 나를 대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인이기에 언니라는 보통명사까지는
포기할 수가 없어 다시 ‘밍키언니’로 돌아온 요즘이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높은 만족도 탓인가 아니면 이제야 세상을 조금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나이의
시점이 된 건가,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이라 가능한
“39세의 밍키온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