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슬 Jun 10. 2023

[엽편소설]마지막 피자 한 판

지금 5명의 아이들 눈앞에 있는 건,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피자 한 판이다. 지구 멸망 하루 전날이라고 해도, 생일파티는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막냇동생은 친구 네 명을 불렀다. 채영, 곤, 우리, 준수. 그들 앞에는 프라이드치킨과 토핑이 별로 없는 고구마 피자, 펩시콜라가 있었다. 코카콜라는 너무 빨리 동나는 바람에 구할 수 없었다. 각자 포장해 온 선물은 반짝이는 포장지로 싸여있었다. 


15년 전에도 생일파티를 이런 식으로 했다. 엄마가 준 5만 원을 가지고, 친한 친구들을 불러 피자집에 갔다. 그땐, 만 원짜리 피자 두판이면 다 같이 배불리 먹었다. 생일선물은 취향에 맞지 않는 열쇠고리나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는 싸구려 반지, 별자리 목걸이 같은 것들. 그리고 노래방에 가서 내일 지구가 끝날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울고 웃고 방방 뛰었던 게 기억난다. 다음 날, 지구는 끝나지 않았고, 그런 생일 파티를 다섯 번 정도 더 한 뒤에 그만두었다. 


이제, 정말로 지구멸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만 ‘투모로우’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는 영화처럼, 평소처럼 출근하고 장사하고 놀고먹던 사람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니 그제야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날을 마무리했다. 오랜 첫사랑을 찾으러 갔다는 얘기는 너무 뻔했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았다. 한강 수영장에서 ‘옷 입고 수영대회’가 열린다거나, 록밴드가 국회도서관에서 공연한다는 소문이 돌자, 누군가는 세상이 말세라고 말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날은 말세였다. 세상의 마지막. 


생일파티가 모두 끝나고, 동생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어느 주말 저녁처럼 햄을 잔뜩 넣은 부대찌개를 끓여 먹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막냇동생은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서워했다.

 “먼 여행을 떠나는 거야” 

엄마의 말에, 동생은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을 겨우 다스리고 잠에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지구인들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꿈을 꿨다. 이주하는 행성으로, 딱 한 가지 물건만 가지고 갈 수 있는 조건이 있었고, 사람들은 금목걸이나 의사면허증을 챙겼다. 국회의원 배지, 집문서, 명품 가방을 챙기는 이도 많았다. 나는 무엇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피자 한 판을 챙겼다. 내가 어릴 적 즐겨 먹던 고구마 피자였다. 동네 친구 S는 매일 저녁에 보던 생생 정보통을 녹화해 챙겼다. 시골에 놀러 갔다가 반딧불이를 인상 깊게 본 Y는 반딧불이를 유리병에 담았다. 된장찌개를 유독 잘 끓이던 아빠는 된장이 든 작은 항아리를 챙겼다. 엄마는, CD 플레이어가 없으면 듣지 못하는 옛날 가수의 CD를 챙겼다. 누군가는 CD플레이어를 챙겼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 가서도 잘 살았다.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고,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하는 생생 정보통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꼭 지구인 것 같았다. 고구마피자로 생일파티를 하고, 밤하늘에 빛나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그리고, 엄마는 가져온 CD를 듣지 못했다.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온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CD는 재생되지 못하고, 만지면 안 되는 박물관의 아주 옛날 물건처럼 오랫동안 장식되어 있었다. 지구인들은 그 장식품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 걸 장식품으로 두고, 좋아하는 건 지구인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