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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Nov 30. 2023

콩국수의 맛

나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

 

 

 

몇 해 전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드러난 피부가 장판에 쩍 달라붙던 여름. 외할머니댁에서 동그란 상 하나를 펴놓고 뱅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콩국수. 담백하고 눅진한 콩물의 맛을 몰랐던 나는 외삼촌 방에 들어가 서랍에 있는 몽당연필이나 녹슨 클립, 군번줄 같은 걸 만지작거렸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다시 콩국수를 조우하게 된 사연은, 팀장님의 메뉴 선정에 있다. 나도 20대 땐 콩국수의 맛을 몰랐다며 먹다 보면 맛있어진다는 다소 반강제적인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정신 차려 보니 테이블엔 뽀얀 콩물이 담긴 그릇이 올라왔고, 나는 설탕과 소금 사이 무엇을 넣어야 더 맛있을까 고민하며 첫 콩국수를 마쳤다. 배고파서 먹기는 했지만, 김치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으리라. 그 후에도 몇 번 더, 콩국수를 먹으러 갔고 무심히 심심하면서도 간간이 들어오는 소금의 짭조름한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것을 계기로, 더위가 진해질수록 엄마랑 친구들이랑 콩국수를 먹으러 다녔고, 가기 전에, 김치가 맛있냐고 꼭 물어보고는 했다. 콩국수를 맛있게 먹게 되면 어른이 된 거라는 어린 날의 작은 믿음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감탄할 것 없는 일상을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도 어느 날은 소금처럼 짠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고, 설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지난여름은 소금에 가까웠다. 태양의 기운은 나를 짓눌렀고, 바닥에 딱 붙어 일어서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콩물에 소금을 넣으면 그 둘이 어우러지면서 더욱 담백하고 맛있는 콩물의 맛을 느낄 수 있댔다. 바닥에 딱 붙어 한 생각들이 있잖니.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고,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않은 것뿐. 그런 시간이 있어 겨울을 앞둔 지금은 다시 일어서 하얀 눈도 밟아 봤잖니. 그걸로 너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맛있어졌잖니.


나는 깊어진 나의 인생이 맛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여름, 그다음 여름, 그 다다음 여름에는 콩국수의 계절이 가는 게 아쉬워하는 때도 오겠지. 김치 없이도, 입술이 새하얘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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