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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Dec 08. 2023

연필깎이

나는 내가 11월 3일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몇 번만 부러져도

키가 금세 줄어든다


세상에 나와야 하는 건

심(心)뿐만 아니라

그걸 단단하게 받쳐줄

나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뾰족하게 정제된 모습으로

바랐던 건

뭉툭한 엉망이었다


여전히 위태로운 완벽함은

연약한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길 바란다


연필은 연필을 모르고

흑연은 흑연을 모른다

나무도 나무를 모른다


깎이는 순간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깎인 것을 쓰는 것은 누구이며

깎인 것으로 쓰인 것은 무엇인가

그걸 읽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걸 다시 쓰고

다시 깎고

읽고


그걸 다시 깎는 사람은 누구인가


연필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힘주어 깎아도

필통에 들어가지 않는 연필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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