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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Apr 13. 2023

암환자 엄마와 보낸 마지막 5일 임종준비

다시 한번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너무 두렵다

2023년 4월

엄마를 보낸 지 한 달 반이 지나갔다.

3월 회사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박을 했다.

주말에는 친구들이 돌아가며 재워주고 내 옆을 지켰다.

4월에는 집에서 잠을 자보려고 하는데 누우면 눈이 뜨겁고 눈물이 계속 흘러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언니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다 죽었다. 가까운 가족의 이별은 벌써 6번째인데 엄마의 죽음은 이해되지 않는다. 적응되지 않는다. 믿기지가 않는다. 인터넷에 글을 찾아보는데, 두 달 이상 슬퍼하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글을 쓰면 다인가 엄마의 죽음 전에는 평생 아빠의 죽음을 슬퍼한 나인데, 그럼 평생 정신과에 가야 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가이드에 가두려 하는가? 쓰라리고 아프다.




암환자 엄마와 보낸 마지막 5일, 임종준비


5일 전

5일 전, 엄마가 다시 일어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엄마가 언니와 내가 많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 다리 얼굴 몸에 있던 붓기가 가라앉았다. 눈에 막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은 없어지지 않았고 가래 끓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잠시 정신이 들어 말을 했다. ‘아프다’라고)

엄마 옆에 붙어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든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만나기까지를 반응 없는 엄마는 다 듣고 있었을까. 다시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릴게 너무 무서워서 인터넷에 임종증상을 찾으며 계속 비교했다.

발이 차가워질까 봐 발을 계속 주무르고 허리에 손을 넣어 들어가는지를 확인했다 귀가 뒤로 처지나 몸에 반점이 생기나 답답하지는 않을까 엄마 자세를 계속 바꿔줬다. 그냥 혼란의 밤이었다. 병실에는 엄마의 심박소리 와 나밖에 없는데 내 마음은 연탄이었다. 그냥 연탄도 아니고 불붙은 연탄 익지 않은 연탄으로 빨갛지도 않고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가득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4일 전

혈압 150/89 오후 8시 20

혈당 269

엉덩이 빨간 반점 발등 반점 무릎반점이 생김

손이 파랗게 변함

엄마의 가래소리가 강해졌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 옆에서 수건으로 엄마가 불편할까 몸을 계속 닦았다. 종종 삐-하는 저산소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엄마가 산소호흡기 계속 때려하고 있었다. 엄마의 몸은 계속 따뜻하고 내가 온 뒤 소변 량이 계속 늘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엄마의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가있어서 충전을 했더니 엄마자신에게 쓴 메시지가 우리가 오기 이틀 전부터 써져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오후 5시, ㄷ엉거드느턷ㄷ7#등 엄마는 의식이 깨있던 시간을 기록한 걸까? 그러면 도대체 그때 왜 전화를 하지 않은 거야.


3일 전

엄마마스크를 큰 마스로바꿈

혈변

혈당 313

혈당 256

혈당 279

더 이상 엄마의 산소마스크가 엄마의 호흡을 보장해 주지 못하자 엄마의 얼굴을 반을 덮는 산소마스크로 변경했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 엄마의 얼굴을 누르는데 눌린 부분이 돌아오지 않아서 호흡기를 찬 부분만 얼굴에 자국이 남았다. 언니가 코로나검사를 받고 와 나랑 자리를 바꾸었다

나는 다이소로 향했다. 간호사들이 엄마가 욕창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베개를 여럿 샀다. 욕창 어릴 적 이야기만 듣다가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너무 놀라서 이것저것 만져보며 푹신한 쿠션 두 개를 골랐다.

언니에게 쿠션을 가져다주고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 저녁에 병실로 들어왔다.

잠이 오지 않아서 버티다가 누웠는데 꿈을 꿨다.

나는 흰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케이크를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엄마에게 케이크를 줬는데 엄마는 케이크 두 개를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2일 전

오전에 엄마 기저귀를 가는데 엄마에게 검은색 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색 물감 같은 변들이었다. 기저귀를 가는데 살도 없는 30kg대 몸에서 변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그때였다 엄마의 호흡이 멈추기 시작했다. 산소가 내려가 급하게 담당 간호사 분들께 전화를 걸었다. 두 명의 간호사가 뛰어와 상황을 확인했다. 기저귀를 가는 도중 변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 난장판이었다. 엄마 욕창 방지를 위해 반배게는 검은색 변이 범벅이 되고, 산소 포화도 삐-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산소 포화도가 진정되면 갈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엄마가 죽는다면 우리 엄마 똥 속에서 죽어서 불쌍해서 어떻게 하며 눈물이 계속 나왔다. 다행히 사건은 무사히 지나갔고, 나는 병실 침대를 닦고 또 닦았다.

오전 전쟁을 치르고 엄마 손을 꼭 잡고 다시 잠을 잤다. 오후에 일어났는데, 엄마의 의식이 약간 돌아와 있었다. 우리가 말을 하면 손을 휘져으며 반응을 했다. 언니와 나는 아까 흑색변이 엄마 나쁜 게 나빠져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희망을 계속 품었다. 어젯밤 좋은 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시 일어나기를 바랐다.

오후 밥을 먹고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언니에게 엄마를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만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언니는 엄마가 말을 한다고 했다.


1일 전

돌아와 간신히 회사를 가고 5일 동안 너무 몸이 뻐근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아무 말 안 하고 몸이 아프다 했는데, 마사지하는 분이 이 철이 2월 말이 그런다고 했다. 날씨가 바뀌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이때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집에 가려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5통 넘게 와있었다.

언니였다. 엄마를 이제 임종실이 아닌 일반 병실로 옮긴다고 엄마보다 위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다시 일어날 수 있어서 그런거라고 좋아했고, 언니는 막 울었다. 계속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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