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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서생 Dec 25. 2023

이것이 R&D 카르텔이랍니다, 당최

정부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뒤늦은 명분 찾기

12월 12일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R&D 카르텔의 정의와 구체적 사례 8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6월 27일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 먹기, 갈라 먹기식 R&D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이후 6개월 만에 정부 인사가 카르텔에 대해 실체를 제시한 첫 사례입니다. 


조 차관은 R&D 카르텔을 '국가와 공공의 이익 창출보다 개인과 특정 무리의 이익 확보를 위해 R&D를 기획하고 예산 배분·평가 등에 부당하게 개입해 실력과 열정이 있는 연구자의 기회를 훼손하는 행위 또는 그 결과'라고 정의했답니다. 8가지 카르텔 사례는 아래와 같이 제시했습니다. 


조성경 차관이 언급한 8가지 카르텔 사례. [사진=대덕클럽]


HelloDD의 단독 보도 이후 조 차관의 R&D 카르텔 예시에 대한 후속 기사가 나왔습니다. 조 차관 발언에 수긍하는 의견이 있다는데, 저는 '이것이 정부 연구개발 예산 5조를 깎을 만한 사안이었나'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 이유는 제시된 사례가 과제 단위에서 몇몇 연구자들이 저지른 행위입니다. 카르텔이라고 할 수준이 안 되는 좀도둑 수준인 것이죠. 예산 5조가 깎일 정도면 나라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의 범죄 집단이어야 할 듯한데, 동네 양아치 수준이라는 것이죠. 조 차관이 제시한 카르텔 사례 1번에서 3번은 출연연과 관련된 것입니다. 지난 8월 내년도 출연연 예산을 올해 대비 20~30% 정도 삭감한 명분을 찾으려 한 것일까요? 출연연 연구자들이 아는 교수들에게 과제를 주고, 같은 제목의 연구를 한 사례가 올해 대비 4,000억 원 정도가 삭감되는 이유로 타당한 것일까요? 학창 시절에 받던 단체기합과 같은 것인가요? 몇몇 개인의 잘못을 집단 전체로 돌려 함께 벌을 받던, 우리나라의 낙후됐던 모습이 오늘날 재연되고 있다니 기함할 지경입니다. 


지난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민형배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장관에게 묻습니다. “용산 대통령실이나 대통령으로부터 장관님께 정말 표현하기 힘든 거친 언어를 구사해서 비난을 했다는 소문이 시중에 파다하다”며 “(이런 일이) 실재하느냐”, “어떻게 저런 말을 쓸 수가 있지 싶을 만큼 거친 언어로 장관을 비난했다고 하는 얘기가 지금 과학기술계에 파다하다”며 “있었느냐 없었느냐”. 이 장관은 “그냥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들을, 여러분들의 의견들을 잘 들었다”라고 질문 취지에 맞지 않게 답합니다. 여러 공방 끝에 야당 조승래 의원이 마무리합니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험한 얘기가 오간 것에 대해서 인정도 안 하지만 부인도 안 한다”.


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의 격노'에 높으신 분들이 제대로 된 사실을 전달 못하고, 아니 아무 말도 못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겠죠. 대통령이 얼마나 크게 화를 내시길레 장차관이 주눅 들어 이러시는 것일까요?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본인의 자리 만을 지키려 하지 말고, 과학기술계를 위해 바른 소리를 전달한 뒤에 명예롭게 본인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면 안 되는 것일까요? 당최... 학교에서 제자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요. 


이번 정부 수립 이후 12월 25일까지의 뉴스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빅카인즈에서 키워드 '격노'로 검색한 뉴스 기사는 1,054건입니다. '격노'라는 단어의 원 크기가 가장 큰 것은 빈도 수가 높은 것을 의미합니다. 검색어이니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다음으로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실'의 원 크기가 큽니다. 그리고 '격노'라는 단어와 '윤석열'이라는 단어가 가장 가까이 위치합니다. 이는 뉴스 기사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격노의 주체는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윤석열-장관-회의-질책'이라는 단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감장에서 장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당시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것은 저뿐인가요?   

윤석열정부 기간(2022.5.10~2023.12.25) 중 뉴스 기사의 언어 네트워크 분석 결과 

지난 정부 수립 이후 같은 기간 동안의 뉴스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뉴스 기사 수는 1,027건입니다. 기사 건수는 현 정부의 기사 수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시 '격노'의 원 크기가 가장 큽니다. 다음으로 '대통령'의 원 크기가 큽니다. 뉴스 기사에서 '격노'는 '대통령'에게 많이 쓰는 단어인가요? 그런데 아래 그림에서의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닌 미국 대통령 트럼프인 경우가 많게 나타납니다. 언어 네트워크에서 같은 색으로 표현되는 단어들이 같은 주제로 묶이는 그룹입니다. 한 기사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같은 색으로 표현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지금과 그 때는 달랐습니다. 

문재정부 기간(2017.5.10~2018.12.25) 중 뉴스 기사의 언어 네트워크 분석 결과

지난 6월 27일 '대통령의 격노' 이후 삭감된 R&D 예산에 이유와 논리는 없습니다. 합리적인 설명이 있다면 과학기술계는 반성하고, 자정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연구현장에 계신 분들은 지각 있는 분들이니까요. 2023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2024년에는 정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지각 있는 결정을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HelloDD, [단독]조 과기차관, 논란의 " 'R&D카르텔' 실체" 8건 첫 제시, 2023. 12. 18. 

HelloDD, "과연 '카르텔' 지목하고 예산 5조 깎을 사안이었나?", 2023. 12. 21. 

시사위크, ‘과학 강국’이라더니… 예산 25% 날리는 정부, 2023. 8. 11. 

한겨례, “대통령에게 거친 말 들었다던데” 과기부 장관 ‘그저 웃지요’, 2023. 10. 11. 

시사IN, 그것이 알고 싶다 'R&D 예산 삭감 미스터리',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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