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의 이른 오전, 병원에서 만성 무릎 질환을 진단받았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예민함도 날로 커졌다.
올해 겪은 업무 변화 역시 내 건강 악화의 일부를 차지했다. 한동안은 회사 건물만 봐도 숨이 막혔고, 업무에 대한 집중력도 점차 떨어졌다. 쌓이는 일들에 걱정은 늘었고, 팀장이라는 자리는 내게 중압감만 가져왔다.
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매일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의욕이 넘치다가 다른 날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즐거웠던 여행도, 약속도 흥미를 잃었다. 습관처럼 출근하고, 울면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침대에 누워있는 일상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예전의 나로 도무지 돌아가기 어려웠다. 머릿속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모든 것이 고민이자스트레스였다.
한 달이 넘도록 퇴사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예민한 신경을 갉아먹는 무릎 질환과 회사나 일상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퇴사를 부추겼다. 당장 아파 입원할 정도가 아님에도 그랬다.
건강 때문에 당장 이직도 힘에 부치고,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라 여러 걱정이 앞섰다.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업무 역시 내가 충분히 해내야 할 업무인데 그렇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의 무능함을 탓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많은 퇴사 사유들이 마치 나를 속이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서른하나, 쉼이 필요한 순간. 나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순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 앞서나가고 있을 내 친구들, 이력서에 남을 긴 공백기와 텅 빌 통장 잔고.
무엇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지만. '과장님, 저 많이 고민해 봤는데 퇴사하려고 합니다.' 기어코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말을 내뱉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 새로운 누군가를 충원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인수인계를 하며 회사의 내 모든 것을 정리했다. 뒤죽박죽 섞여 있던 내 업무 폴더, 잔뜩 쌓여있던 메일함, 책상 한편에 늘어진 서류까지. 얼마 없던 내 개인 물품과 마우스, 슬리퍼, 핸드크림도 치워냈다. 인터넷을 열어 방문 기록도 삭제하고, 카카오톡 로그인 정보까지 없애고 나니 정말 코앞까지 끝이 다가왔다.
사직서를 작성하고, 퇴사 기념 회식을 몇 번 참석하고 나서도 크게 실감 나지 않았다. 퇴사하는 당일까지도 내 업무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다. 나 하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지만 못 끝낸 일들이 생각났다.
마지막 회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길, 택시 안에서 어쩐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싱숭생숭, 복잡 미묘와 같은 단어와도 어울리는 기분. 업무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는데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일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충원하고 보니 그 사람이 나보다 일을 잘하는 것 같아 나의 부족함을 깨달아서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부족한 나 자신의 막막한 미래가 걱정돼서 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나를 위한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 알 수 없어서 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순간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했다. 이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꼭 한 발 성장하기 위해.나의 재정비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래서 결국은 언젠가는 말할 수 있도록. '무계획 퇴사도 괜찮아'라고. 서른한 살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key point. 진짜 퇴사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급여 문제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 심리적 또는 건강의 적신호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 때. 물론 이 같은 상황이 꼭 퇴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환승 이직을 할 수도 있고, 회사와 협의를 할 수도 있다. 퇴사하기 전 여러 방면으로 치료를 받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해 봐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