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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Jun 19. 2023

유언

나의 장례식장 BGM

첫 번째 유언을 남겼다.


집 앞 도서관 리모델링이 길어진다. 도보로 가기 어려운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빌려오라고 하면  초등학생은 자꾸 만화책을 빌려온다. 나의 잔소리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선 귀찮음을 감수하고 함께 도서관에 가는 편이 낫다.


도서관은 산 아래 위치해 있다. 나무가 우거져 있는 도서관 가는 길은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엄마와 단 둘이 드라이브에 나선 아이는 신이 나서 좋아하는 팝송을 크게 틀고  들뜬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의 호응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시끄러워 다른 노래 듣자'

 '그럼 엄마가 듣고 싶은 노래 틀어'


노래를 틀기 전 아이에게 말했다.


'유언을 하나 남길게

 이 노래를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엄마 장례식장에 꼭 틀어줘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찬양이야'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색한 공기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정-한나형( 손경민)


나의 눈가에 주름이 지고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잠시 눈 감고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여기 있습니다.

가슴 아픈 날도 많았었고 기쁜 날도 있었습니다.

짧은 여정을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여정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

지금까지 나의 모든 여정 인도하셨네

나의 남은 모든 여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리라

나의 모든 삶 마치는 날까지 붙드시리


엄마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엄마는 또 이겨내시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13년의 투병 기간 동안 늘 의사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고 엄마는 매번 이겨내셨으니 말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준비 없이 찾아온 엄마의 이별에 어수선했던 장례식장, 너무도 미숙했던 그날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친가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빠는  장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결국 식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묘로 엄마를 모실 수 없었다. 비어 있는 안내 데스크엔 철없는 내 친구들이 돌아가며 조문 온 사람들을 맞아야만 했다. 그 쓸쓸하고 어수선한 장례식장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불룩 나온 임신 6개월의 내 배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떠나고 싶다. 엄마와 이별하는 슬픔의 순간에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의 부담에서 자유롭게 해 주고 싶다.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슬픔 대신 희락을 재대신 화관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감사한 장소로 만들고 싶다.


찬양을 끝까지 조용히 들은 어린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하늘나라 가실 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찬양을 틀어드릴 생각도 못 했었어, 그게 늘 서운하더라고, 그러니까 엄마 이 찬양 꼭 틀어줘 ‘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첫 번째 유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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