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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빛 Dec 16. 2024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에 흥미를 느낀 건 대학생 때였다. 좋아하던 일본 밴드의 보컬이 매일 10km씩 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리는 행위가 괜히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1분도 채 되지 않아 포기했다. 힘들어서 도저히 뛸 수 없었다.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던 달리기는 그 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달려보기로 마음먹은 건 헬스장에 다니면 서다. 러닝머신을 보고 한눈에 매료되었다. 지면을 박차지 않아도 러닝벨트가 돌아가주니 이 정도라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금방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큰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딱 노래 한 곡 분량만큼만 뛰자." 그렇게 3분이 5분이 되고, 5분이 10분으로 늘었다. 지금은 평균 30분 동안 달린다.



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노래를 듣기 위해서다. 노래를 너무 좋아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감상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달리기는 이를 채워준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시간은 온전히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노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노래는 20년 넘게 짝사랑 중인 대상이다. 그러나 마음만큼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력 중 하나가 달리기다. 달리기는 심폐지구력을 높여주어 노래를 부를 때 숨이 덜 차지 않도록 돕는다. 호흡을 단련하기 위해서 달린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주로 듣는 음악은 비트가 강하고 빠르며 음량이 큰 록이나 메탈이다. 록 밴드 공연에 가서 머리를 흔들며 뛰어노는 걸 좋아한다. 매번 공연장을 갈 수는 없는 법이니 대신 러닝머신을 탄다. 드럼이 된 듯, 베이스가 된 듯, 기타가 된 듯, 보컬이 된 듯한 일체감을 느끼며 달린다. 그렇게 달리면 금방 시간이 간다.


땀을 흘리기 위해서다. 원체 땀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땀을 흘리는 게 이렇게 개운한 줄 몰랐다. 속도를 올려 달리면 금세 땀이 뻘뻘 난다. 땀범벅이 된 채 러닝머신에서 내려가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달리기는 고통스러운 행위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감각은 불쾌하다.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달린다. 이유는 별것 없다. 관성 때문이다. 시작했으면 멈출 수 없고 정한 목표까지 달려야만 한다. 도중에 멈추기엔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깝기 때문에 이 악물고 달린다.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둘지 더 나아갈지는 내 선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등산으로 인생을 예습하듯 나는 달리기로 인생을 연습한다. 힘들면 쉽게 포기하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조금 더 버티려는 훈련을 한다. 인생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쳇바퀴 위를 도는 행복한 햄스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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