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강박증이 심한 사람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으니, 과거형으로 써야겠다. 나는 강박증이 심한 사람이었다.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짜증 났고, 시간 약속이나 스케줄 관리에 엄격했고, 일에 마감이 없으면 불안했다. 사소하게는, 냉장고가 꽉 차 있으면 과식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나뒹굴면 즉시 치워야 직성이 풀렸고 가스 밸브나 전기 콘센트에 민감했으며 책장에 책이 누워있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책을 일으켰다. 내 마음이 정한 규칙이 나를 힘들게 했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작은 개가 아니다 보니 집안에 떨어진 털 청소만 해도 하루가 가고 몸은 피곤했다. 12년 같이 사는 지금은 내가 개집에 얹혀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산책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날씨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었다. 그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약속이 펑크 나거나 스케줄이 엉켜도 짜증 나지 않았다. 느슨해진 내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박이라는 게 진짜 무서운 거였다. 자신에게 정신적 족쇄를 채우는 것인데, 그러고 싶지 않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더 답답할 노릇이다. 타고나는 건지, 유년기의 성장 과정 탓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엄마가 준 DNA 같다. (엄마, 미안) 어쨌든 덕분에 일 잘한다는 소리는 듣고 살았지만, 너무 칼 같아서 동료들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했다. 강박은 자신을 향할 때와는 다르게 밖으로 향하면 ‘냉정한 시선’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그런 시선은 편견과도 관련 있다.
예전에 나는 성형수술과 문신 시술에 관대하지 못했다. 어디 숭고한 몸에 장난을 쳐! 그러니까 나는 조선시대 태어났어야 할 사람이었다. 성형은 자존감 없는 여자들이 하는 것이고 문신은 자신감 없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상당히 무식한 단정이자, 정말 기막힌 선입견이었다. 그랬던 내가 20대에 성형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지금은 쌍꺼풀 수술을 고민 중이다. 눈이 점점 짝짝이가 되어가서 스트레스다. 또한, 몸 곳곳에 문신을 했다. 성형과 문신은 자존감이나 자신감과 상관없었다. 나는 그 자존감과 자신감을 다 가지고 있어도 성형과 문신을 좋아하게 됐으니까.
특히, 문신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 할 말은 소설에 다 썼다. 그래서 여기서는 간단히 결론만 말해야겠다. 나는 상처를 덮기 위해 문신을 시작했다. 이후, 상처가 없는 부위에도 문신을 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주는 ‘위로’ 때문이었다. 내 상처를 덮고 있는 문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언니가 남긴 마지막 글귀, 내 소중하고 늙은 반려견. 과거 어느 때의 나에게 주는 위로처럼 문신으로 새겼다. 문신을 볼 때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폭이나 양아치, 노는 애들만 하는 게 문신인 줄 알았던 나는 꽤 묘한 미안함이 생겼다.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십 대 소녀가 타투이스트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아직 출간하지 않았다.
최근에 또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나는 연예인들이 돈을 공으로 번다고 생각했다. 예쁜 얼굴, 멋진 몸으로 가만 앉아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 다음 생에는 연예인으로 태어나서 타고난 몸으로 돈을 긁어모아야지. 이런 멍청한 생각. 몰라서 생겼던 선입견.
새로운 출판사와 색다른 출간을 하게 되었다. 지난 주, 출간될 소설책에 들어갈 사진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갔다.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여러 번 바꿔가면서 쑥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포토그래퍼가 원하는 섬세한 각도를 따라가는 동안 내 영혼은 몇 번이나 나를 떠났다. 다리에 쥐가 나고 머리가 아팠다. 다 귀찮고 피곤했다. 근데 다시 카메라 앞에 서면 배우라도 된 듯 최선을 다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깨달았다. 연예인도 개고생하면서 돈 버는 거구나. 그냥 가진 것만으로 많이 버는 게 아니구나. 타고난 밑천이 좋을 뿐, 노력 없이 부자 되는 사람은 없구나.
내가 가진 강박을 반려견 덕분에 많이 없앴고, 내가 가졌던 몹쓸 선입견들은 경험을 통해 없애며 산다. 그 두 가지는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정리 강박이 다른 사람을 게으름뱅이로 만들기도 했고 나의 편견이 멀쩡한 사람을 양아치로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성실함이나 자존감은 그 사람을 충분히 겪어야 알 수 있다. 부지런함을 타고난 나 역시 지금은 개집에서 개집답게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게으른 사람이 된 건 아니니까. 문신한 사람들을 양아치라 분류했던 내가 문신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양아치가 된 건 아니다. 어쩌자고 그런 틀에 갇혀 있었을까. 반성하자, 이은정.
나는 계속 깨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보지 못한 것, 내가 겪지 못한 것, 내가 확인하지 못한 것들에 관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 그리고 직접 도전해 볼 것. 나이 들수록 자신을 깨는 일이 쉽지는 않다. 새로운 경험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이 가진 작은 강박이나 편견이 모이면 대단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싸우는 사람들, 근거 없이 오해받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흘리는 눈물에 한 방울도 보태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을 강박과 편견에 관해서 자주 생각한다. 자신을 잘 관찰해야 알아볼 수 있다. 글쓰기가 꽤 도움이 된다. 아닌 척, 괜찮은 척, 수용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바로 선 사람이 되고 싶다.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멸칭은 강박과 편견과 아집과 똥고집과 과거의 자신에 사로잡혀 시선이 휘어버린 기성세대를 말하니까.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노인이 되어도 세상을 열린 눈으로 보고 싶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과거의 내 시선을 끊어내는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참 할 일이 많다. 그런데 그것도 글쟁이에겐 하나의 과제이자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강박이여, 가라.
편견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