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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Sep 04. 2023

단톡방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7


왜 단톡방을 나가셨어요?     


내가 자주 듣는 싫은 질문 중 하나다.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싫어서 나간 거지. 시도 때도 울리는 알림음은 무음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여있는 것만 봐도 속이 울렁거린다. 처음에는 눈치가 보여서 나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수다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용기를 내어 방을 나가면 개인톡이 왔다. 왜 나갔는지 굳이 이유를 듣고 싶어 했다. 개인톡마저 차단하면 문자가 왔다. 집요하게 연결되려는 사람들이 너무 골치 아프다.     


가끔 일 때문에 단톡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작가들은 프리랜서라 소속이 없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공동 작업에는 단톡방이 유용하다. 칼같이 일과 관련된 톡만 올라온다. 사무적인 글과 대답밖에 없다. 새로운 메시지가 없어도 깜빡한 게 있을까 싶어서 일부러 들어가 보기도 한다. 업무용 단톡방의 좋은 점은 빠르게 일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일과 관련된 단톡방은 별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건 연결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말 그대로 일을 더욱 잘 처리하기 위한 회의 공간이다.   


가족 단톡방, 친구들 단톡방, 모임 단톡방, 입주민 단톡방…. 보통 서너 개에서 그보다 더 많은 단톡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나로서는 좀 신기할 따름이다. 휴대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힘든 세상에서 전원을 끄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 알림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눈치 보여서 방에서 나가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카카오 측에서 ‘단톡방 몰래 나가기’ 기능을 출시했겠는가.      


이쯤 생각하니, 정말 궁금하다. 몰래 나가기 기능까지 써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라면, 도대체 단톡방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일이 아닌 사적인 단톡방은 그 방에서 비슷한 수다를 떨 사람들끼리 모이면 된다. 굳이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들일 필요 없다. 단톡방에서 어떤 소속감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을 초대하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단톡방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단톡방도 SNS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누군가 좋은 일이 있어서 단톡방에 올렸더니 축하한다는 톡이 끝도 없이 달렸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안 경조사를 단톡으로 알리면서 계좌번호도 함께 띄웠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을 알리고 축하와 모바일 선물을 받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겨운 개인의 경조사를 카톡으로 실시간 퍼트리고 있었다. 상대가 단톡방에서 어떤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더 성실하게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나는 나가고 싶은데 나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작정하고 모든 단톡을 나와버렸다. 속이 후련했다.     


단톡방에서 나왔다고 끝은 아니었다. 그걸 빌미 삼아 단톡방에서 단체로 험담이 오고 간다는 말을 들었다. 단톡방을 나갔다는 이유로 유별난 애가 되어 있었다. 그 말도 단톡방에 남아있는 누군가가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려준 내부고발자를 차단했다. 내가 자의로 단톡방을 나온 이상,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알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느 내부고발자 덕분에 단톡방에서 나온 걸 정말 다행이라 여겼고 눈치 보느라 망설였던 시간이 아깝기는 했다.     


나는 한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해, 가진 물건들을 처분한 적이 있었다. 처분하기 전에 망설였던 물건들이 정말 많았다. 그 물건의 값어치라든가, 의미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후회할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정리하고 나니 망설였던 마음들이 다 부질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끝나지 않는 관계는 없구나. 그저 있을 때 아끼는 게 최선이겠구나.     


처분해야 할 것은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연결, 소통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단톡방을 인맥이라 여긴다면,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인맥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톡방에 유명 인사가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친분을 쌓고 싶어 할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유명 인사라고 가정했으니 말이다.     


단톡방의 순기능 또한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90%의 단점밖에 모르겠다. 수십, 수백 명이 모이는 단톡방에서 한 사람씩 한 문장만 써도 수십, 수백 개의 톡이 쌓인다. 내가 가장 불편했던 점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아침, 밤, 새벽에도 톡 수는 늘어났다. 알림을 무음으로 해 놓아도 컴퓨터에 로그인이 되어 있으면 오른쪽 하단에 끊임없이 대화창이 올라왔다. 글 작업에 방해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톡을 하면서 나는 빨간 숫자가 주는 공포를 겪었다. 999라는 숫자가 표시되자, 이게 나한테 의미 없는 방이구나, 생각했다. 999개의 메시지를 읽지 않아도 내 일상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업무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어떤 시스템의 순기능만 얻고 싶거든 단호함이 필요하다. 업무적으로는 연결되어야만 하는 의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단톡방 내부고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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