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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뱅이 Mar 27. 2023

인생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와이프가 내 뽀뽀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입 냄새가 심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생활은 그다지 바뀐 게 없었다. 좋은 생활이라 말하긴 힘들지만 수면 시간도 그대로, 먹는 음식도 그대로, 침대에서 뒹굴뒹굴거리는 것도 그대로였다. 즉, 입 냄새가 갑자기 심해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달라진 건 아내였다. 얼마 전에 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고생 꽤나 했다. 며칠이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조금이라도 맵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기만 하면 아내의 배에선 바로 반응이 왔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자기가 아프니 내 건강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입 냄새가 심하다는 걱정을 핑계로 샘을 내는 것 같았다. 분명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탓에 예민해졌을 것이다. 후각은 더 예민해져서 평소와 같은 내 입 냄새(라고 나는 확신한다)를 더 심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거기에 옆에서 남편은 자기 혼자 '음~ 맛있다'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데 이건 뭐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겠지. 처음에는 당뇨가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그 탓에 기계까지 사서 혈당 체크를 해 봤다. 수치가 정상인 결과를 당당히 보여주자 와이프는 심통이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너는 왜 안 아프냐!라는 표정이랄까.


하지만 와이프는 여전히 내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바로 신장 때문이었다. 10년 전에 요로 결석에 걸려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고 그 이후로도 가끔씩 발가락 통풍이 올 때가 있었다. 의사 말에 의하면 나는 요산 수치가 높은데 이건 평생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와이프는 다시 신장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냐면서 나를 병원에 끌고 갔다. 의사는 다행히 신장하고 입냄새하고 연관이 크지 않은 것 같다고 했지만 문제는 피검사였다. 사실, 결과 자체는 전에 한국에서 봤던 결과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와이프가 알아버렸다는 게 아주 큰일이었다.


맥주를 많이 마시면 안 되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건 내가 말해준 적이 있어 와이프도 진작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의사와의 삼자대면을 통해 와이프는 신장에 좋지 않은 것이 뭐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병원에선 일주일 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친절하게 짜줬다. 덕분에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양은 500ml에서 330ml로 줄어들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 먹는 라면도 거의 못 먹고 있다. 와이프가 만들어주는 찌개(원래 만들어줬던 것도 한국에 비하면 짠 편도 아니었다)도 전보다 훨씬 더 싱거워졌다.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혼술은 이곳 대만에서 내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삶의 낙 중 하나였다. 그것도 일주일에 겨우 한 번이나 마시려나. 한번 마실 때 많이 마셔봤자 보통은 두 캔이 최대다. 그런데 그걸 한 캔, 500ml도 아니고 330ml만 마시라니. (그리고 그 일이 진짜 일어났다! 어제 500ml 맥주를 마시다가 와이프가 중간에 잔을 뺏어 가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앞으로는 집에서 마음 편하게 맥주를 마실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무슨 재미로 인생을 알아가야 하나 싶다. 대만산 위스키가 괜찮다고 하던데 이참에 주종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인생을 즐길 새로운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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