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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10. 2024

싸움의 기술

어른들은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코로나 시대를 직격탄으로 맞은 아이들은 순딩 순딩하다. 예전에 가르쳤던 5, 6학년 아이들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관계 맺기에서 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로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으며 부모 역시 아이들이 싸움하는 것을 꺼려한다.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아이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싸움을 회피한다. 부모의 요구가 반영된 행동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저학년 때 이미 충분히 부대끼면서 여러 번 부딪쳤을 텐데 비대면수업을 하면서 아이도 부모도 그 경험의 기회를 잃었다. 충분히 친구들과 어울리고, 싸움하고 화해해 본 아이들과 달리 지금 고학년 아이들은 서로 깊이 다가서는 것도 얽히는 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싫은 소리 한 번에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못 견뎌하며 상대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른다. 단순히 코로나시대를 걸쳤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작은 행동마저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학교에 큰 이슈로 대두되면서 아이도 부모도 관계면에서 조심스러워진 부분이 있다. 


  코로나시대에 '학교폭력'은 확실히 줄었다. 비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교는 혼란스러웠고 교사는 효율적인 수업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어느 새부터 일부 교사들은 비대면 수업을 반겼다. 비대면 수업은 말 그대로 "수업"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싸울 일이 없기에 아이들 사이를 중재할 일도 없으며,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전달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하고 예전에 비해 조금 많아진 공문을 처리하는 것이 아이들의 생활전반을 함께 하고 지도하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비대면 수업으로 학교폭력이 모습을 감춘 듯했다. 그때의 아이들은 친구와 놀지도 못하고 함께 학습하는 경험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컸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협동하는 활동보다는 개인별로 하는 활동에 치중되어 한동안 아이들은 함께 하는 경험도 하지 못했다. 

  이 시대를 걸친 아이들은 당연히 제대로 싸워본 경험도 없다. 친구들과 생기는 흔한 문제를 몸으로 겪어보지 못하고 눈으로 귀로 보고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교육을 매번 해야 했고 아이와 부모는 당연히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친구관계에 더욱 예민해지고 부딪치는 것을 꺼려하는 데 있어서는 사소한 문제에도 '학교폭력'을 운운하는 분위기도 단단한 한몫을 했으리라 본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아이들은 갈등과 싸움을 피해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부모 뒤에 숨거나 아예 소통을 멈춘다. 서로 마음에 감정을 쌓아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낸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두루두루' 사귀었으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한다.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을 원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되묻는다, 부모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정말 두루두루 잘 지내는지 다른 사람과 전혀 갈등이 없는지. 부모의 인간관계 형성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성향이 비슷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의 인간관계를 살필 때 부모의 사회성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부모들의 바람과 달리 나는 아이들에게 싸워도 괜찮다고 한다. 갈등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 어색해지는 것을 겁내지 말고 싸우면서 해결해나가자고 한다. 서로 돌아올 수 있기 위해 선을 지키면서. 큰 소리가 나도 괜찮고 서로 마음에 있는 말을 툭 끄집어내야 한다고 한다. 어색해지는 것은 잠시지만 그러면서 더 친해질 수 있고 상대를 더 이해할 수 있다. 더 친해질 수 있고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또 하나, 많은 부모의 요구와 달리 나는 모든 사람과 다 친해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맞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반목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키면서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는 회피하거나 한걸음 물러나기보다 서로 부딪치면서 조율하고 타협할 수 있는 경험이 필수요소이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다. 싸움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이 아이의 문제에 휘말리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아이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싸워보고, 갈등을 겪으면서 해결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어야 한다. 즉, "싸움의 기술"을 익히게 도와 각 사람에 대한 거리를 가늠하는 능력과 어느 누구와도 조율하고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되 상대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를 위해 부모를 비롯한 많은 어른이 갈등을 겪어낼 아이에 대해 두려움이나 불안은 버리고 작은 다툼마저도 '학교폭력'으로 치부하지 않는 다소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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