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 땀 한 땀 그렇게 조금씩 채워간다.
천성일지 모른다.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잘해야 한다는 아빠의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20대까지 낮은 자존감으로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려나. 자의 반 타의 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늘 동동거렸다. 그것이 좋을 때도 있었고 뿌듯하기도 했으니 계속 그렇게 살았겠지 싶다.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주라면서 집에 있는 좋은 것을 남에게 기꺼이 주던 아빠가 그리도 싫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었다. 내 것을 챙기지도 남기지도 않으면서 남이 원하면 언제나 기쁘게 내어주었던 것이 이제 와서 힘들게 느껴지는 것인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챙기는 것도 지쳤나.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와 달리 잘 퍼주고 호구같이 이용당하는 것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제는 늘 나 자신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괜찮아를 주문처럼 외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 내 인생에서 보이질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자각에 허탈함이 밀려들어오고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하는 질문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가 좋아서 한 것이고 내 오지랖으로 행해진 많은 일인데 그 속에 '나'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삼켜버린 허탈함에 잠시 모든 것을 멈추었다. 양가 부모님께 주기적으로 드리는 전화, 공식적이지만 내키지 않는 회식, 기억하고 고민해서 챙기는 선물 그리고 상대에게 격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잠시 접었다. 숨을 제대로 쉬는 것이 먼저였다. 누구는 고3 엄마가 마음이 편하나 보다 하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냥 귀를 막았다.
벗어나기 위해,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나'에 집중하면서 걸었다. 딸, 동생, 엄마, 아내 등의 이름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를 생각하면서 걸어도 잡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야생화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손재주 없는 내가 꽃 하나 수놓는데 2시간 정도, 그 사이에 다른 생각을 하면 삐끗 어긋나서 뜯어내고 다시 해야 했다. 그 시간만큼은 잡념이 없었다. 오롯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데 집중했다. 매일매일 그렇게 1~2시간 남짓 바늘을 들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재미있냐고 물었다. 재미보다 무상무념이 좋다 했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면서 아무것도 없는 무지 천에 수를 놓는다. 점점 꽃이 좋아지고 있는 이 나이에 도 닦듯이 손이 많이 가는 꽃을 놓는다. 어느새 내 마음도 야생화처럼 작지만 강한 힘을 갖기를 바라면서. 그러면서 얼마 전에 찾아온 제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애쓰지 마. 네가 너무 힘들면서까지 붙잡으려 하거나 해내려고 하지 마."
작은 것 하나하나 완벽하게 해내려는 그 녀석이 안쓰러운 마음에 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난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쳐놓고 이제 와서 애쓰지 말라고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건넨 것은 힘들어하는 그 녀석이 짠하면서도 요즘 말로 스스로를 갈아 넣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스스로를 잃지 않길 바랐다. 지금의 나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안다. 이것도 인생이라는 것을. 한 땀 한 땀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했을 것이며 나아가게 하고 있음을 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 누구에게든 진심으로 대하고자 한 마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많이도 나왔던 아름다운 헛수고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로 인해 채워지는 것도 믿는다. 다만 예전처럼 '나'를 가장 낮은 바닥에 놓거나 제일 뒷전으로 밀어 넣지 않고 지치지 않는 한에서, 잃어버리지 않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채우면서 내가 가득한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