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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11. 2024

수능 3일전

떨리지 않는데 떨린다.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도 주변에서 들리는 '사춘기 아이의 질풍노도' 혹은 '중2병'에 대한 이야기로 겁먹었던 적이 있다. 아직 딸들이 사춘기 문턱에 들어서지 않을 때였다. 문을 쾅 닫거나 대화를 끊는 아이, 가부키 화장에 비싼 브랜들의 옷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우리 딸들은 어떻게 사춘기를 지날까 하는 궁금함 대신 공포감이 먼저 자리 잡았다. 그 많고 다양한 이야기 중에 희망적인 것은 별로 없었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잔뜩 겁을 집어먹어서 그런지 딸들의 사춘기 시절은 생각 외로 순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능력 시전, 말만 하면 눈물을 뚝뚝을 흘리고 잘 삐지기, 서로움 폭발시키기, 어른에 대한 불신 표현하기 등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당연히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딸의 본성을 가리지는 못했다. 겁먹었던 것의 반의 반도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엄한 엄마, 아빠 아래서 뻗댈 수 있는 한계, 드러누울 수 있는 정도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하여간 소문은 소문이었을 뿐이었고 한차례 지나가는 강풍이었을 뿐이었다. 그 또한 지나갔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사춘기만큼이나 겁을 먹었던 것이 입시와 관련된 고등학교 생활이었던 거 같다. 중학교 때 진로를 정해서 고등학교 때 생기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를 닦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름 성실하게 고등학교 생활하는 아이를 보면서 또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랐는가 하는 초심의 마음이 뒤통수를 탁 치면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불안과 초조함이 사라지자 여러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고 응원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무심해졌다. 남들은 엄마가 알아서 해주는 많은 부분들, 특히 엄마의 정보력에 아이의 대학이 달라진다는 그 말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아이가 설명해 주는 입시정보가 내가 아는 다였다. 수시원서를 쓸 때도 전적으로 아이 결정에 따랐고 원서비만 결재했다. 아쉬움도 있었고 더 넣어보길 원하기도 했지만 내 인생이 아니라 생각하니 강권할 수 없었다.


  이제 몇 년 동안 공부했던 시간들의 결과를 남겨두고 있다. 아이는 떨리는지 재수하면 그 비용을 지원해 줄 것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뒷배가 든든해야 수능 때도 떨지 않을 수 있다면서. 혹시 수능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동안의 공부를,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을 거냐고도 물었다. 아이의 질문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만큼 떨리는데 자기는 얼마나 떨리겠는가.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판가름날 수 있다는 잔인한 절박함에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지금 내 아이에게 고맙다. 결과와 상관없이 수학 학원 하나를 다니면서 스스로 공부해 낸 아이가 대견하다. 정보력이 약하고 조금은 무심한 부모 아래서 스스로 입시에 대해 알아보고 자기 진로를 위해 노력해 온 그 아이의 시간을 존중한다. 씻으라고 잔소리를 할지언정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한 딸이 기특하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당연히 결과가 좋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성실하게 살아준 내 아이의 수능이 끝나는 날, "시험 잘 봤어?" 대신 "애썼어."라는 말과 함께 꼭 안아주어야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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