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지만 학교에도 많다.
학기 초,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어떤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 어떤 선생님이 좋았어?"
질문 하나에 아이들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꺼낸다.
"왜 좋았는데?"
이유를 묻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보면서 고민한다. 진짜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선생님일까. 고민 끝에 아이들은 저마다 좋은 이유를 조심스럽게 말한다.
"별로 혼내시지 않았어요. 무섭지도 않았고요."
"학기말에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주셨어요."
"우리끼리 노는 시간을 많이 주셨어요."
"영상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선생님은 잘 안 보여주시잖아요."
저마다 열심히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말에 뒷목을 잡는다. 그거 월급루팡인데? 잔소리하지 않고 노는 시간을 많이 주고 영상 많이 보여주는 거, 정말 편하다. 그동안 나는 업무처리를 하면 되니까. 신경을 덜 쓰고 굳이 기싸움을 하거나 고쳐주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감정 소비도 없고 에너지도 절약된다. 그런데 그런 교사는 뭘 하러 학교를 다니는 것일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주된 업무인데 그것을 대충 하는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
안다. 나처럼 가르치는 일이 가랑비에 옷깃 젖듯이 스며드는 일이라서 좋아하고, 단순하게 아이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 좋아서 교사하는 사람이 다가 아님을. 직장으로 교직을 택했으니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럼 정말 가르치는 일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혹시 '잘한다'는 잣대를 혹은 '최선'을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누가 봐도 아닌데 혼자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최선이었다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여러 의구심이 드는 교사들이 현시대를 운운하며 분노할 때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일어난다. 이 시대에 교사가 가르칠 수는 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예민하고 민감한 부모들의 이기심과 간섭, 민원으로 이미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이없기도 하다. 옴짝 달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는 그전에는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는지, 손발이 묶였다며 절규하는 많은 교사들의 시대적 상황에 그냥 묻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닌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여러 심각했던 악성 민원으로 가르치는 일을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던 나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을, 교사 상황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날카롭게 잔인하게 말한다, 학급이라는 소왕국에서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은 월급루팡 교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고.
수업을 하면서 이해 잘하고 잘 따라가는 아이들만 데려가는 것이 과연 수업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에게 닿는 수업을 고민하기보다 아이들이 듣거나 말거나 수업을 빠짐없이 했으니 본인의 역할은 다했다고 하는 것이 교육인가. 아이들이 성장 여부에 상관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믿는 교사에게 묻고 싶다, 어떤 직장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되 과정과 결과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는지. 가르치는 것만이 교사의 일이라 생각한다면 일타강사처럼 쏙쏙 박히게 잘 가르치던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니 학교에서는 인성교육만 하거나 보육만 하면 되겠다고 주장한다면 바른 인성을 지니게 애쓰던지... 답답하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고 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게으른 왕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리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는 교사의 교실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공기가 다르다.
교육 현실을 답답한 것은 단순히 변해가는 학부모와 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교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이 시대를 핑계로 도리어 모든 것을 방관하면서 기본도 하지 않는 교사들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이라 해도 교사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아직 작게나마 소리 내고 조금이나마 교육을 이어가는 것은 월급루팡이 되지 않고자 하는 교사의 절규 덕분이며 조금이라도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의 몸부림 덕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사라는 직장을 가진 당신에게 (나를 포함하여) 묻고 싶다. 당신은 교사인가, 월급루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