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감기와 독감이 유행하는 요즘, 아이들 복장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땀이 많고 추위를 안 타는 녀석들이 반팔이나 얇은 옷을 입어 잔소리가 끊이지 않게 한다. 특히 심한 아이가 있어서 점퍼 없이 운동장에 나가면 다음 날 놀지 못하게 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밥을 다 먹고 운동장에 나오는데 점퍼 없이 야구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발견하고 냅다 들어오라고 소리 질렀다.
"A, B, C 야, 점퍼 안 입고 놀아서 내일 운동장 놀이 금지야."
그랬더니 B, C 가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선생님은 A한테만 이야기하셨는데요. 저희한테는 말씀 안 하셨어요."
"헐~ A처럼 입고 놀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친구한테만 말한 것일까?"
"그럼요. 저희 이름은 안 부르셨잖아요."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말하면 그 말이 의도하는 전부라 생각한다. 쓰레기가 많아서 손가락질하면서 줍자 하면 지적한 그 쓰레기만 줍고 옆 쓰레기는 그냥 둔다.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깊어가는 중, 우연히 엄기호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요즘 젊은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표현 그 자체에 욕망이라 그 뒤에 숨어있거나 존재하는 뜻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에니매이션의 한 주인공을 예로 들었다.
"가난하게 살면서 맨 빵만 먹던 주인공은 잼 바른 빵을 먹는 것이 소원입니다. 잼 바른 빵을 먹고 싶다면 보통 우리는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구나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냥 그 주인공은 진짜로 잼 바른 빵을 먹고 싶은 것이고 그게 다인 거예요."
누구랑 이야기하든 말 그대로를 욕망으로 생각하지 않고 배경을 살피면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그 욕망의 원인까지 짐작하는 우리가 요즘 세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젊은 세대들의 표현(언어) 곧 욕망이고 그게 정체성이 되는데 그러다 보니 표현에 환유, 비유, 의미 등을 내포하지 않는다 했다. 말 그 자체가 전부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말을 해도 그 안에 포함되는 많은 내용과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만 보고 듣는 세대라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표현이 욕망이 되지 않고 정체성 자체로 굳어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시는데 한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요?"
그 한탄을 듣고 절망의 표정을 본 교수님은 명쾌한 답을 주셨다.
"읽기 능력을 키워주면 됩니다."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읽는데 문제가 많다. 독해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표정, 상황,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물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 같기도 하다. 한국인의 특화된 장점이라 알려진 "눈치"가 부족해지고 있다. 상황에 맞는 언행을 알지 못해 쭈삣거린다.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는 경우도 종종 본다. 상황을 읽어내지 못하니 시키는 것 하나만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물병이 넘어져서 흘러내려 바지가 젖고 있는데 '아...' 소리만 내는 아이에게 우선 물병부터 빨리 세 우라 했더니 정말 물병만 세우고 흘러내리는 물은 그대로 두어 옷이 다 젖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흘러내리는 물을 피해 뒤로 나오라 하지 않았고 책상의 물을 닦으라 하지 않은 내 잘못인 것이다. 정말 한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읽기 능력을 키우라는 것!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혹은 제대로 이야기를 읽게 해서 언어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까지 생각하고 고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데 큰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어떻게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읽힐 것인가. 충분히 많이 읽고 몸으로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며 상대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채고 상황에 맞게 할 일을 찾아내는 능력은 결국 사회성이고 생활력이다. 아이들에게 장난스럽게 "눈치 챙겨!"를 외치고 있지만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를 느낀다. 읽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본인도 읽어낼 힘을 갖도록 여러 면에서 자극을 주는 방법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