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을 대하는 태도

급식 지도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by 보름달

"한 번 먹어봐."

급식 지도 중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가 아동학대로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아동 학대로 신고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되었다. 급식 지도도 하나의 교육으로 필수적인 상황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던 것은 이미 옛날 일이다. 편식하는 아이가 학교 와서라도 먹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과 전반적으로 모든 생활의 바탕을 지도해야 하는 초등학교의 특성으로 교사들은 사실 점심도 편하지 먹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복잡해졌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권하거나 먹이는 것은 폭력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 한편 편식하는 아이를 왜 지도하지 않냐는 민원을 넣는 부모도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

이런저런 민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인지 요즘은 많은 교사가 아예 급식 지도를 하지 않는다. 음식을 고루 먹거나 먹지 않거나 밥은 한 숟가락만 받거나 폭식을 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진다. 엄한 집에서 자란 나는 싫거나 좋거나 골고루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중에서야 그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이 되어있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편식이 심했다. 삐삐 말라가지고 좋아하는 음식보다 싫어하는 음식이 많았으며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밥 덜어주세요.' 인사말처럼 외쳤다. 그런 나를 짠하게 여기신 엄마는 늘 따로 반찬을 만들어 놓으셨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도 먹고 싶다는 내 한마디에 바로바로 해주셨다. 그럼에도 엄격한 집안 분위기로 인해 식탁에서 음식투정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싫어하는 것이라도 한번 이상은 먹어야 했으며 기본으로 정해진 반찬을 먹지 않으면 식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고역이었는데 이상하게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먹어본 음식들을 자꾸 찾게 된다. 그리고 처음 접하는 음식도 시도해 본다, 슬쩍슬쩍.


먹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우선, 어렸을 때 싫은 음식을 참고 먹어 본 경험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하기 싫은 마음을 굳이 누르지 않는 요즘 아이들은 싫은 것을 견디면서까지 뭔가를 해보는 경험이 부족하다. 그런데 매일 먹는 급식에서 그런 태도를 배운다. 다 먹지 않아도 싫은 것을 한번 먹어봄으로 자기 조절능력을 조금씩 기른다. 인내심은 덤이다. 참으면서 한번 해보는 도전심도 생긴다. 아주 사소한 노력이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습관이 되고 인성이 된다. 착한 척도 계속하다 보면 진짜 착해진다는 말처럼 작은 실천이 쌓여서 습관이 되고 그것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아이에 맞추어 음식을 하는 가정이 많다고 들었다. 아이 위주로 음식을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식탁에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만 오롯이 맞추는 것이 괜찮을까 반문한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하면서, 싫은 것도 먹어보면서... 그렇게 사소한 실천으로 성취감을 얻고 삶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에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급식지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아주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알기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어, 그 뒤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