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던 무렵, 많은 유학생들이 계획보다 일찍 본국으로 돌아갔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은 하루가 급해졌다. 오를 줄만 알았지 절대 내려갈 줄 모르던 집세는 순식간에 꺾였고, 부동산 앱에서는 ‘즉시 입주 가능’이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도 아이들 학교 근처로 이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존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나온 단독주택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원래 살던 곳보다는 비쌌고, 잠시 머물다 갈 캐나다에서 굳이 이사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포장이사도 없는 나라에서 혼자 세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집주인과 약속을 잡았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컬드색(cul-de-sac)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설렜다. 차를 세우고 벨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거실 통창 너머의 정원이 나를 숨 멎게 했다. 5월의 여린 빛을 머금은 잔디밭에 널찍한 데크, 한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 그 옆으로 동백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밖에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철저히 숨겨진 비밀의 정원이었다. 그 집이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왔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집 안의 낡은 가구도, 청소하기 까다로운 카펫 바닥과 칙칙한 주방 조명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집에 꼭 살고 싶었다.
정원을 갖게 되자 내 삶은 풀과 흙을 중심으로 바뀌어나갔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임시의 공간이었지만, 가진 정성을 모두 쏟았다. 나의 놀이터였던 화원에서 늘 눈과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꽃들을 잔뜩 사다가 심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찾아가는 정원에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은 잔디밭 한가운데 낮은 무덤처럼 솟아있는 부분이었다. 한 번 손대면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참고 참다가 결국 못 참고 삽을 들어 파헤쳐 보니, 과거에 잘라낸 썩은 나무뿌리가 이 집의 원래 주인인 양 깊이 박혀 있었다. 적당히 모른척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내 앞길의 방해물을 제거하겠다는 거창한 각오로 손도끼를 들고 며칠을 매달렸다. 비 오듯 흐른 땀이 흙을 적시고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단함은 오히려 나를 채웠다. 뿌리를 다 파내고 새 흙을 덮어 평평하게 만든 후 잔디 씨앗을 뿌리는 과정은, 단순히 정원을 가꾸는 일을 넘어 끈기라는 근육을 만드는 운동선수의 고된 훈련과도 같았다. 밤낮없이 몰두했던 그 열흘은 이후로도 오래 기억에 남아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열정이 솟는지 각성시켜 주었다. 새로 심은 잔디는 전보다 더 푸르고 두껍게 자라 금세 완벽한 잔디밭이 되었다. 공허했던 내 마음도 빽빽이 채워져 갔다.
집 안에서도 나는 바빠졌다. 어린 식물을 분양받아 나뭇잎 하나하나를 닦아가며 키우는 일은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 나의 일상이었다. 햇살과 바람과 나의 정성을 먹고 훌쩍 자란 실내 식물들은 훗날 내가 캐나다를 떠날 때 친구들에게 나를 기억할 선물이 되었고, 일부는 꽤 좋은 가격에 분양되기도 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내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지구가 내일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서양의 어느 학자가 깊이 이해되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나도 내가 심은 꽃나무와 함께 조금씩 그 집에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