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역 5번 출구 개인심리상담
근래 들어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 새벽기상도 무너졌다. 몸도 마음도 힘든 상태다. 자신만만했던 마음가짐도 흔들렸다. 그래도 2호선 여행은 강행했다. 이럴수록 더욱 움직여야 했다. 이번주 방문할 역은 이대역이다.
지난주 신촌역에서 하지 못한 '개인심리상담'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다행히 역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번 실수를 만회하고자 미리 전화했다. 18:30으로 예약했다. 퇴근하고 쉬지 않고 가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담시간은 50분, 비용은 7만 원이었다. 처음 받는 상담이라는 사실이 나를 긴장시켰다. 미리 질문지를 작성해 봤다. 곧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심적으로 지쳐있었다. 마음속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면 될 일이었다.
이대역 5번 출구로 나와 아현동 방향으로 200m 정도 걸었다. 상담센터가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화이트톤 배경에 심플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상담사 분이 소리를 듣고 주섬주섬 나왔다.
가벼운 인사를 건넨 후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러곤 옆방으로 이동했다. 요즘 나의 심리상태로 상담을 시작했다. "최근 부서이동을 했다. 상당기간 교육을 받았다. 내일모레 회사로 복귀한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상담사는 경청하면서 다음 말을 유도했다.
"요즘 회사에서 구조조정 중이다. 다행히 나는 부서이동으로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얘기들이 실타래 풀리듯 나오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그저 들었다. 가끔씩 핵심을 콕콕 찔러 물었다. 능숙한 상담 덕분에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장대한 서사가 쏟아졌다. 스스로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놀라는 눈치였다. 상담사는 나의 성향이 '흑과 백'같다고 했다. 회색존이 없었다. 모 아니면 도였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나의 말을 경청하더니 부드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동희님 말을 듣다 보니까 방금 백조가 떠올랐어요. 겉으로는 여유 있어 보이지만 수면 아래로는 열심히 발을 움직이는 백조요." 적절한 비유였다. 나는 나를 너무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니 이상하게 후련했다. 말하면서 인생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마음속 무거움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가벼운 상담을 예상했다. 빗나갔다. 깊은 위로를 받아 버렸다.
오늘 아침은 마음이 헛헛했다. 서둘러 눈에 들어온 책 한 권을 집어 가방에 넣었다. 일 년 전 읽었던 팀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였다. 책 안에 정의할 수 없는 불안의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엔 여러 현자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목차를 읽어 내려갔다. 한 문장이 빨려 들어왔다. "너무 애쓰지 마라." 잠시 멈췄다. 경직됐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았다. 나를 뻔히 알고 있는 사람의 충고 같았다. 모든 답은 책 속에 었었다.
앞으로도 나는 심리상담을 이용할 생각이다. 누군가 지혜는 아프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사람과 책을 통해서 이중으로 위로받았다. 공허했던 마음이 따뜻함으로 찰랑거렸다. 다시 나아갈 동력을 찾았다. 2호선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다. 2호선을 다 돌고 나면 나는 무엇을 알게 될까? 조금은 성숙해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