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자 책모임 4_먹는 인간/헨미 요
방학이 무섭다. 24시간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공포는 먹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에 있다. 아침 먹고 뒤돌아서면 점심 먹을 생각을 해야 하고 점심 먹고 뒤돌아서면 저녁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먹이기 위한 노동과 먹이기 위한 사유로 하루를 채워야만 한다. 엄마가 된 나는 이제 먹는 시간보다 먹이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먹여야 할 사람들, 그것도 아주 잘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공포에 떨면서도 직면한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또는 얼마나 못 먹고 있을까? 배고픔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루하루 음식을 먹는 당연한 행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또는 의식도 못 하고 있을까? (...) 이런 여러 문제를 접하고 느끼기 위해 나는 이제 긴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p.21
이 책의 저자 ‘헨미 요’는 세계 곳곳을 누리며 경계 없이 사람들의 먹는 얼굴과 뱃속을 궁금해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부근 교도소에서 푸른색 장미 문신으로 등을 가득 채운 덩치 큰 수감자를 보고는 대뜸 이런 생각을 한다.
“저 남자의 거대한 뱃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통일이 되고 나서 죄수들의 위장이 변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p.102
그의 모든 궁금증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먹는 행위’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버려지는 음식을 먹는 사람, 인육을 먹은 사람, 세계에서 가장 큰 음식점을 하는 사람, 기차, 교도소, 서커스단, 난민캠프, 청학동, 위안부 할머니들…. 다양한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은 먹거나 먹지 못하거나,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한다. 모두 다른 시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살면서도 ‘먹는다’, ‘먹어야 한다’는 그 행위는 동일하며, 먹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행위인 동시에 그럴 수 없어서 인류가 가진 모순과 불평등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러니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치열하게 먹이던 시간을 지나 여름이 지나고 방학이 끝났다. 방학이 끝나고 고작 한 끼에서 벗어난 것뿐인데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에 도취되어 나는 나를 먹이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수시로 밥을 굶는다. 밥하기 귀찮아서, 쉬고 싶어서, 글이 잘 안 써져서, 그 정도로 나를 아끼지는 않아서. 공포와 함께 먹거나 해방과 함께 굶는다. 이것은 지금을 사는 나의 아이러니이다. 오늘도 밥을 거르려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도 좋고, 꾸역꾸역 살기 위해 챙겨 먹는 것도 좋으니 어찌 됐든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다고. 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음식을 먹듯이 아이러니를 넘어 현실을 살기 위해서.